28일 밤 11시6분(현지시각), 석달 전 28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아시아 지진해일의 최대 피해지역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반다아체가 또다시 리히터 규모 8.7의 강진으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캄캄한 거리는 집을 빠져나와 조금이라도 바닷가에서 더 멀리, 더 높은 곳으로 필사적으로 대피하려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몸부림으로 가득 찼다.
“땅이 심하게 흔들리자 곧바로 또다시 지진해일이 덮칠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왔다.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집에서 빠져나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다.” 현지 주민 디아 자하라(24)는 29일 <뉴욕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무작정 뛰기만 했다. 공포에 질려 달리고 또 달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26일 강진(리히터 규모 9.0)의 진앙에서 겨우 100㎞ 떨어진 곳에서 3개월 만에 다시 일어난 이번 지진은 지난번과 같은 강력한 지진해일은 일으키지 않았으나 당시 기억을 아직도 떨치지 못한 현지 주민들을 공포로 짓눌렀다. 반다아체에서 여성들은 아이들을 끌어안고 울면서 “알라 후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달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약간의 옷가지를 허겁지겁 챙겨넣은 작은 가방을 움켜쥔 채 고지대를 향해 달려가거나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피난행렬을 이뤘다고 <에이피통신>은 전했다.
수마트라섬에서 200㎞ 떨어진 니아스섬은 진앙에 가까워 피해가 가장 컸다. 29일 저녁 8시30분(한국시각) 현재 니아스섬에서 발견된 주검만 330구에 이르고, 다른 지역 사망자 수를 합치면 최소 430명이 숨졌다. 그러나 유숩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도 <비비시방송>에 “주검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무너진 집들의 규모로 보건대 사망자가 대략 1천~2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거석문명으로 알려진 니아스족 등 50만명이 살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서핑 명소로 알려진 이 외딴섬 니아스에서는 주택의 70~80%가 무너졌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려 있어 피해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에이피통신>은 “거리는 완전히 파괴되고 불길이 치솟고 있다”는 현지 가톨릭교회 신부의 말을 전하면서 수천명의 사상자가 났으나 해일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의료진마저 고지대로 피신해 버렸다고 보도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12월의 지진해일로 이미 340명이 숨지고 1만여명이 이재민이 됐다. 현지에는 강한 비가 내리가 있고 활주로가 심하게 손상돼 공항도 폐쇄된 가운데 중장비도 제대로 없어 구조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지진 발생 3~5시간 뒤 인도네시아와 타이, 스리랑카에서는 해일경보가 해제됐지만 석달 전의 악몽을 잊지 못한 주민들은 집에 돌아가기를 거부한 채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머물며 공포에 떨었다.
한편,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비상 근무체제를 가동해 인도네시아, 타이, 스리랑카, 인도, 미얀마, 말레이시아 주재 공관과 함께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며 “현재까지 한국인 피해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민희 유강문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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