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종족분포 및 개황
프랑스 여성 구호요원들 석방때 ‘결정적 중재’
“협상창구 열려…결국 아프간 정부·미국이 열쇠”
“협상창구 열려…결국 아프간 정부·미국이 열쇠”
정부와 탈레반의 직·간접 협상이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협상 중재역을 맡은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 부족 지도자들의 영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명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상 10여개의 종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아프간은 여전히 부족의 영향력이 강하게 유지되는 전통사회다. 한국인 인질들이 잡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남부의 가즈니주에는 탈레반의 주축인 파슈툰족과 과거 이곳을 점령했던 몽골제국의 후손인 하자라족이 섞여 살고 있다. 이 중 파슈툰족은 두자니와 길자이 등 대표적인 부족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파슈툰족이 탈레반의 핵심세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슈툰족 부족 원로들이 협상을 중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족 원로의 영향력=‘지르가’로 불리는 부족대표 회의는 파슈툰족 부족 지도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열쇠다. 주요 사안은 지르가를 통해 결정된다. 아프간의 의회도, 탈레반의 지휘 체계도 지르가에 기초한 구조다. 탈레반이 부족 지도자들의 중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게다가 탈레반은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반정부 투쟁에 나서면서 지역 부족 지도자들의 민심과 지원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가즈니주를 사실상 반반씩 장악한 채 정부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이 영향력을 넓히려는 차원에서라도 부족 지도자들의 중재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 4월에도 남부 님로즈주에서 납치됐던 프랑스 구호요원들이 부족 원로들의 중재 노력으로 석방됐다. 당시 탈레반은 인질로 붙잡고 있던 프랑스 구호요원 2명 가운데 여성인 셀린을 납치 25일 만에 석방하면서 칸다하르주 서쪽 마이완드 지역의 부족 원로들에게 인도했다. 그때도 탈레반은 석방 조건으로 프랑스군 철수와 아프간 당국에 수감된 탈레반 무장요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부족 지도자들은 인질이 아프간 사회에서 함부로 죽이지 않는 여성이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철군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점을 들어 탈레반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패 열쇠는?=그러나 부족장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협상 창구’와 ‘중재’일 뿐 결국 석방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아프간 정부와 미국의 결정일 것으로 보인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이란어과)는 “부족장과 종교지도자가 큰 역할을 하는 아프간에서 이들을 통로로 협상 창구가 빨리 만들어졌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부족장들이 탈레반의 요구조건에 대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으며, 결국 아프간 정부와 미국의 입장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의 요청에 못이겨 탈레반 수감자 5명을 석방하면서, “이탈리아 언론인 석방과 관련해 심대한 강요를 받았다”며 “누구의 경우, 어느 국가를 위해서도 이런 행위(수감자 맞교환)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군을 철수하겠다는 이탈리아 정부와 ‘테러리스트에게 양보하면 안 된다’고 압박하는 미국 정부 사이의 고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프간 정부가 사실상 미국의 뜻에 반하는 독자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이 탈레반 수감자 23명의 무더기 석방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핵심 변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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