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자 석방을 둘러싼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른 24일 밤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모인 피랍자 가족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텔레비전를 주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회의실 문 잠근채 섣부른 반응 삼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동요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 대표 차성민(30)씨는 24일 밤 무표정한 얼굴로 이 말만 되풀이했다. 이미 6일 동안 세 차례의 협상 시한 연장을 겪으면서 여러 차례 천당과 지옥을 넘나든 터였다. 이날 오후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 모여든 가족 27명은 극심한 긴장감과 걱정으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가족들은 모두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했다. 간혹 회의실 밖으로 잠시 나온 가족들도 취재진의 질문에 응하지 않았다.
잠시 회의실이 공개됐을 때 가족들은 대부분 담담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50대 남성은 새로운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작은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받아적었다.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과 일부 피랍자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지만 가족들은 섣불리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탈레반이 제시한 협상 시한인 밤 11시30분이 가까워오자 닫힌 회의실에서 가족들의 기도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왔다. 한두명이 기도를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사귀환을 소리내어 빌었다. 11시30분께 언론을 통해 탈레반이 한국인 8명의 석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도 소리는 끊겼다. 작은 탄성이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자정께 회의실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차성민씨는 “석방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에 대해 아직 외교통상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확인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감정을 억누르려고 노력했지만 차씨의 목소리는 전보다 들떠 있었다.
25일 0시20분께 가족들은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을 떠나 뿔뿔이 집으로 향했다. 가족들의 표정은 한결 밝았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웃는 얼굴도 눈에 띄었다. 서명희(29), 경석(27) 두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는 “(석방에 대해)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확인은 받지 못해 낙관할 수 없지만 정부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기대하고 있다”며 “한 사람이라도 나쁜 일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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