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의사들이 2일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 한국인 피랍자들의 치료를 위해 인질 억류 지역 방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카불/AP 연합
청와대 특사 파견때와 비슷…한국과 직접협상 포석
아프간정부 배제 효과노린 듯…언제든 ‘돌변’ 가능성
아프간정부 배제 효과노린 듯…언제든 ‘돌변’ 가능성
“최종 협상시한”인 1일 정오(현지시각)가 지난 뒤 한국 정부와 피랍자 가족들을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던 탈레반이 돌연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인질 추가 살해가 임박한 것은 아니므로 잠시 숨을 돌려도 된다는 것을 뜻하는지, 아니면 또다른 파국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인지 확실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탈레반의 부드러워진 태도가 만든 새 국면은 아프간 관리가 “무기한 협상시한 연장”을 탈레반과 합의했다고 밝힌 지난달 27일 상황과 비슷하다. 지난달 27일은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특사 자격으로 아프간에 도착한 날이다.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당시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정부 관계자한테 들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탈레반과 한국 정부 대표단의 직접 협상이 거론되는 점 또한 당시와 닮았다. 지금과 27일의 상황은 모두 탈레반이 한국 정부한테 돌파구를 기대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탈레반의 자세 변화는 우선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탈레반 쪽은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 수감자 석방 거부→탈레반의 극단행동 유발→탈레반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 고조 및 탈레반의 고립’이라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익명의 탈레반 고위 관계자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부는 우리가 인질을 모두 살해해 이 위기가 끝나길 바란다”며 “시간을 끌어 카르자이 정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압력을 지속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미국 <시비에스>(CBS)에도 “당분간 인질 살해를 중단할 수 있다”며 지연 전술을 펼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인질 살해라는 ‘강공’만으로는 수감자 석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탈레반 쪽에 전달했다. 탈레반으로서도 한국 정부를 궁지로 모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현실적 계산을 했을 수 있다. 한국 정부와 직접 협상을 하거나 한국 여론을 활용해 아프간과 미국 정부 흔들기에 나서는 쪽으로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성 피랍자들에 대한 아프간 내부의 부정적 여론도 탈레반의 극단적인 행동에 제약을 주고 있다. <뉴스위크>와 인터뷰한 탈레반 고위 관계자는 지역사회의 여론이 나쁘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여성들의 운명 결정을 서둘러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상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탈레반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달았다는 전례에 비춰 이번 유화 국면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카르자이 대통령을 면담한 백종천 특사가 빈손으로 돌아선 다음날 심성민씨가 살해됐다. 수감자 석방 협상에 진척이 없으면 “언제든 인질들을 살해”할 수 있다는 탈레반의 위협은 여전히 ‘유효’하고, 새로운 시한은 대변인 아마디의 전화 한 통화로 언제라도 설정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본영 박중언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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