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 설치된 아프가니스탄 피랍 대책본부를 찾아 4주간 아프간 현지 대책반을 이끌다 이날 새벽 귀국한 조중표 외교부 1차관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개된 대면협상에서 이견 못좁혀…분위기 급랭
탈레반 “19일이 시한”…미·아프간 쪽 변화 없어
탈레반 “19일이 시한”…미·아프간 쪽 변화 없어
지난 13일 김경자·김지나씨의 석방과 함께 한때 낙관적 분위기가 감돌던 탈레반 인질 석방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한 분위기다.
남은 인질 19명의 석방을 놓고 한국정부와 탈레반 협상단이 16일 다시 무릎을 맞대는 등 협상을 재개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탈레반은 여자 인질 2명을 우선 아무 조건없이 석방했으니 이제 한국쪽이 성의를 보일 차례라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쪽은 탈레반이 요구하는 구속자-인질 맞교환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의 일”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지와크아프간뉴스>를 보면 양쪽은 한국이 아프간 정부에 탈레반 수감자-인질 맞교환 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겠다는 선에서 서로 이해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압박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조짐은 없다. 탈레반 사정에 정통한 파키스탄 일간 <더 뉴스>의 선임에디터 라히물라 유수프자이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국 협상단이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들을 풀어줄 유연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압둘라 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외신들이 전하는 현장 분위기는 다시 험악해 지고 있다. 탈레반쪽에서는 ‘협상 시한’ ‘인질 살해’ 등의 용어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인질을 붙잡고 있는 가즈니주 탈레반 사령관 압둘라는 “19일이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마지막 시한”이라고 압박했고,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남은 인질을 살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탈레반 지도자위원회가 인질의 운명을 결정하는 논의에 들어갔다”며 모종의 결단이 임박한 것과 같은 분위기도 내비치고 있다. 탈레반으로서는 그만큼 한국 정부를 다시 강하게 압박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압둘라 사령관이 제시한 19일 시한 이후 탈레반이 곧바로 어떤 행동을 보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인질 2명 석방으로 다소 이완된 듯한 협상 분위기를 다시 죄기 위한 조처일 수도 있다.
유수프자이 선임에디터는 다음달 13일부터 한달 동안 진행되는 라마단(이슬람력 9월)이 고비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슬람권에서는 한국의 ‘3·1절 특사’나 ‘광복절 특사’ 처럼 ‘라마단 특사’를 시행한다. 아프간 정부가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은 탈레반 수감자 일부를 라마단 특사 형식으로 석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예상이다. 인질 사태 장기화가 부담스러운 탈레반도 석방자 명단 변경 등 실리적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유수프자이 선임에디터는 “실제 이런 방식의 문제 해결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등 너무 커져 버린 점은 이런 물밑 거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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