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디오니지 테타만치 추기경,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 조셉 라칭거 추기경.
아린제 첫 흑인 주목
디아스 아시아 최적 평가 “다시 이탈리아 출신 교황인가? 아니면 새로운 제3세계 출신 교황인가?” 이달 말께 세계 60여 나라의 80살 아래 추기경 117명이 모인 콘클라베(주교단 비밀회의)에서 누가 265대 새 교황으로 선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 교황이 어느 지역에서 나올 것인지는 가톨릭 교회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현재 세계 가톨릭 신자 수는 빈곤국에서 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새 교황에게 빈곤과 인권 문제가 주요한 과제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 서구에서는 젊은 신도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위기’를 맞고 있어 안팎의 개혁 요구도 거세질 전망이다. 교황청은 동성애와 피임에 반대해 왔으며, 여성 성직자를 거부해 왔다. 남미에서는 ‘가난한 자들의 벗으로서 예수’를 강조하는 해방신학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교회 안 민주화, 곧 교황청 기구의 관료화에 대한 비판과 민주적 선거를 통한 교황 선출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선두 주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출신이 다시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전체 인류의 포용을 위해 제3세계 출신의 교황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미국 <제수이트 위클리> 편집장인 토머스 리스는 <뉴욕타임스>에 “제3세계 출신 교황은 이제 더는 (가톨릭이) 유럽의 교회가 아니며, 보편적이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가톨릭임을 분명히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콘클라베에 참여할 추기경 중 유럽 출신은 이탈리아 20명을 포함해 58명으로 최대이며, 라틴아메리카 출신이 21명, 아프리카와 미국 출신이 각 11명씩이다. 가톨릭 전문가들은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하다면 △교리 해석에서 보수적이면서도 △제3세계 출신이고 △60대 후반 또는 70대 초반의 추기경 가운데서 새 교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나이가 많은 ‘과도 교황’이 선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3세계 출신 중 프란시스 아린제(72) 추기경은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지를 주목받고 있다. 나이지리아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9살 때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국가 출신으로 오랫동안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을 맡았기 때문에 종교간 관계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적격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반 디아스(69) 인도 뭄바이(봄베이) 대주교는 교황청 외교관으로 36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일하며 국제정치 감각을 익혔다. 최소 16개 언어를 유창하게 부려쓰는 아시아권 최적의 후보로 꼽힌다. 전체 가톨릭 신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라틴아메리카 진영의 후보 중에서는 클라우디오 우메스(70) 브라질 상파울로 대주교가 첫손에 꼽힌다. 그는 독일계 이민 후손으로 브라질 군사정권에 맞섰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운동가이던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현재 브라질 대통령)가 미사에서 연설을 하게 했다. 교리적으로는 전통주의를 따르고 있다. 에이즈 예방 콘돔을 나눠주던 성직자를 비난하기도 했다. 오스카르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62) 온두라스 테구시갈파 대주교와 노베르토 리베라 카레라(69) 멕시코시티 대주교도 사회 정의와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후보로 거론된다. 이탈리아 출신 중에서 가장 유력한 디오니지 테타만치(71) 밀라노 대주교는 전통적으로 교황을 배출해온 밀라노 교구의 최고위 성직자다. 교회 안 보수적 단체인 오푸스 데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교리적으로는 중도 보수다. 이 밖에 안젤로 소다노(77) 교황청 국무장관은 경험과 능력을 갖춘 안정된 인물로 꼽히지만, 교황청 남미 대사 시절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유화적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안젤로 스콜라(63) 베네치아 총대주교는 이슬람 전문가로 생명윤리에 대해 전통적 견해를 고수하고 있지만 교회를 현대문명과 연결해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다. 유럽 출신 중에서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인 독일 출신 요제프 라칭거(77) 추기경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해방신학, 종교적 다원주의, 동성애 등에 반대하는 보수적 입장을 보여온 그는 바티칸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 이번에 ‘킹 메이커’ 구실을 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후보로는 크리스토프 쇤보른(60) 오스트리아 추기경과 고드프리드 다넬스(72) 벨기에 추기경도 꼽을 수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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