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국경이 따로 없습니다”
“미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미국 회사가 외국에서 인권침해에 가담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미얀마(버마) 주민들이 세계적 정유업체인 유노컬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해 최근 법정 밖 협상을 통해 거액의 배상 합의를 이끌어낸 타일러 지애니니 변호사는 “미국에서 벌어져선 안 될 행위라면, 외국에서도 당연히 용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는 환경연합·민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잇따라 만났다. 그는 이 만남에서 유노컬 소송의 성과와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도덕적 책임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는 특히 지난 2000년 8월 미얀마 천연가스 시추권을 따내 가스전 개발을 시작한 대우인터내셔널이 자칫 유노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세계화의 진척과 함께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는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환경단체인 얼스라이츠인터내셔널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그가 ‘거인’ 유노컬을 상대로 한 주민들의 외로운 싸움에 동참하게 된 것은 하버드 법대 재학 중이던 지난 1994년 타이-미얀마 국경지대를 방문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유너컬은 안다만 해역에서 개발한 천연가스를 타이로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미얀마 테나세림 지역 일대에 건설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너컬은 주민들을 삶을 파괴하고 외국인 보호 명목으로 동원된 군인들이 살인·강간·불법감금 등 인권유린 행위를 광범위하게 저질렀다.
1996년 법대 졸업과 함께 타이 국경지역으로 날아간 지애니니 변호사는 15명의 지역 주민이 원고로 참여한 가운데 유노컬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했다.
“첫 소송을 제기한 뒤 법정 바깥에서 최종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9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렇지만 합의를 통해 사건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유노컬 쪽이 위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건 아니다.”
지애니니 변호사는 정확한 배상 규모에 대해 “합의사항의 일부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답변을 피했지만, 피해주민에 대한 배상과 공사구간 일대 주민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하는 등 유노컬 쪽의 배상 규모는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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