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박종평 교수 한국외대 아랍어과, 유달승 교수 한국외대 이란어과, 홍미정 교수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중동 다시 깊이보기 1. 아라파트 이후의 팔레스타인
2. 석유와 내전-수단의 명담
3. 이슬람주의 마지막 불꽃, 알제리
4. 중동의 관광대국 꿈꾸는 튀니지
5. 리비아, 투항인가 변신인가
6. 모로코의 정치개혁 실험
7. 중동평화와 이집트의 선택
8. 이슬람주의 산실, 알아즈하르 대학
9. 유럽행 둘러싼 터키의 고뇌
10. 좌담 이라크에선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뒤 총선이 치러졌고, 팔레스타인도 선거를 통해 자치정부 수반을 뽑았으며, 레바논에선 ‘백양목 혁명’으로 시리아군이 물러나고, 이집트에선 24년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속되는 등 중동에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중동 다시 깊이 보기’ 시리즈를 통해 이 지역의 변화를 전해온 <한겨레>는 과연 현재의 변화가 ‘중동 민주화 도미노’인지, 이 지역은 어떤 진통을 겪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박종평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 홍미정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등 중동 전문가들이 12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미 패권 개입, 민주화세력 위축 부를수도” 사회=최근 중동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두고 미국은 ‘민주화 도미노’ ‘중동 민주화’라고 일컫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종평=미국이 중동지역에 잠재돼 있던 민주화 욕구를 표출시키는 구실을 어느 정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내부에서 민주화 과정이 진행돼 왔다고 평가해야 한다. 특히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아랍과 외부세계의 많은 정치 과정을 보도해 민주화 요구를 만들어내는 큰 힘이 됐다. 유달승=최근 등장한 민주화 담론은 이라크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라크전은 석유전쟁일뿐 아니라 중동 질서 재편과도 연관돼 있다. 최근 사태는 미국이 이란과 시리아 등이 중심인 반미 구도를 약화시키면서 친미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종평 교수
“안으로부터 민주화 진행 ‘알자지라’ 방송 힘 보태 하마스등도 제도권 참여” 따라서 진정한 중동 민주화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 물론 내부적인 변화의 욕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집트, 이란, 시리아 내부에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미국이 개입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6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이란에서는 이번 사태로 반미 감정이 폭발하고 있어 보수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반미폭발 이란 보수집권 점쳐 홍미정=1990년대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은 친미 아랍 정부들에 대한 반대파로서 급부상했다. 친미 아랍 정권들이 세력이 강해진 이슬람주의자들을 제압할 힘을 상실하자, 미국은 대안을 찾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은 ‘민주화’를 내걸었다. 그런데 미국이 말하는 ‘민주화’는 일관성이 없다. 알제리 군부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압승을 거둔 1990~1991년 합법 선거를 무효화하고 이슬람주의 세력을 추방한 뒤 권력을 잡고 있는데, 2002년 비공식 통계를 보면 미국은 연간 40억달러를 알제리 정부에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민주적 선거 결과를 무시한 정권을 후원하는 것은 ‘중동 민주화’의 모순을 보여준다. 사회=중동 내부에서는 실제로 최근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슬람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어떤 구실을 하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박=지금까지 이슬람주의자들은 제도권 밖에서 과격한 운동을 통해 미국에 저항하는 세력으로서 그들의 사상을 전달해 왔다. 그러나 지금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나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등은 제도권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재야세력으로서 투쟁하던 이들이 이제 제도권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최근 이슬람주의 ‘민족’ 강조 유=이번 사태를 통해 주도권을 잡는 쪽은 최근 사태를 민주화로 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중동 전역에서 반미 감정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이슬람주의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한편에선 제도권 참여로 가겠지만, 또다른 한편에선 반미 감정을 등에 업고 더 과격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홍=이슬람주의자들의 최종 목표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한 정권 장악이다. 19세기 말 이슬람주의가 처음 발흥했을 때 이슬람주의자들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을 분할한 제국주의자들과 이들과 연대한 아랍 민족주의자들에 대항해 이슬람 전역의 통합을 주창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이슬람주의는 한 국가 안에서 강력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입장이어서 민족주의자로 규정될 수 있다. 이들은 종교를 이용해 민족주의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사회=미국이 민주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 이라크에서 최근 미군 철수 얘기가 많이 나온다. 갑자기 미군 철군이 추진되는 배경은 무엇인가? 유=이라크 총선 뒤 60일 넘게 과도정부 수립까지 많은 혼란이 있었고, 미봉책으로 총리와 대통령 등이 뽑혔지만 현 정부는 상당히 불안정하고 한계가 많다. 이 과정에서 주요 세력인 시아파와 수니파의 최대 쟁점이 미군 철수이고, 이라크 내부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선에서 미군의 단계별 철수가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이 1989년 철수한 뒤 내전이 벌어졌듯이 이라크도 미군 철수 뒤 내전 가능성이 높고 주변국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지역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이에 대비하면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따라서 한국도 자이툰 부대 철군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박=미국은 지금 이라크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도 모른다. 치안은 이라크 보안군에게 넘기고, 그들은 석유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분만 통제할 수 있는 군대를 남기고 빨리 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선거를 치르고 내각을 구성하는 등 정치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올들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란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란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고, 이웃 이라크와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가? %%990002%%
유달승 교수
“미 철군 뒤 이라크 불안 내전땐 지역분쟁 번질수도 자이툰 철수 고민해야” 유=만약 이라크가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더라면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란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도 군사력 때문이다. 현재로선 미국과 이란은 군사적인 충돌보다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다만 이란이 이라크에 개입하지 않도록 압박하고, 이란의 내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선제공격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전 이후 이란 안에서 보수파의 반미 정서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개혁파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고, 대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 이라크의 총리와 대통령이 모두 이란에 망명했던 사람들이어서 앞으로 이란과 이라크의 관계는 밀접해질 가능성이 있다. 사회=레바논은 1975~1990년 내전을 겪은 뒤 오랫동안 별다른 갈등이 드러나지 않다가, 갑자기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되면서 시리아군이 철수하는 등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내막은 무엇인가? 박=최근의 사태는 다분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의 지원과 개입이 큰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표방하는 중동지역 질서 재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미국과 관계가 소원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견제하려는 것도 큰 원인이다. 레바논 앞길 프랑스 개입 변수 유=레바논은 18개의 공식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박물관으로, 언제든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은데 하리리 암살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중동지역의 헤게모니 쟁탈전 구도에서 평가해야 된다. 미국은 레바논 사태를 계기로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이라크 전쟁으로 사이가 벌어진 프랑스를 달래려고 한다. 과거 레바논 식민통치국이었던 프랑스는 경제·문화적으로 레바논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레바논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프랑스가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에 따라 레바논 일정이 조정될 것이다. 사회=이집트에서도 갑자기 대학생들의 독재정권 타도 시위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도 경선으로 대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박=경선으로 대선을 치를 것은 확실하지만 무바라크가 그의 정치적 생명을 내놓을 만큼 경선 폭을 넓힐지는 의문스럽다. 또 야당세력의 힘이 미약하고 제대로 조직되지 않아 무바라크의 입지를 근본적으로 흔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사회=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추진하고 아라파트 사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화를 재개하면서 변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 60년 만에 국가를 설립할 수 있게 되는가? 홍=팔레스타인 이슬람단체 하마스는 2003년에 ‘야신 독트린’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 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원래 하마스 헌장은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과거 팔레스타인 땅 전체를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과거 목표의 22% 땅만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의 모든 무장단체들 사이에서 1967년 점령당한 지역에서라도 국가를 세우기로 합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걸프지역과 아라비아반도 등으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서안을 결코 양보하지 않고 22%를 온전히 내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이 명목상 국가를 수립하더라도 영공과 국경을 모두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완전히 무장해제된 ‘불완전’ 국가가 될 것이다. 사회=표면적인 변화가 아닌 진정한 중동 민주화가 달성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외부적으론 냉전체제와 독재정권 붕괴, 내부적으론 <알자지라>와 같은 언론 발전이 아랍인들의 민주적 감수성을 높여줬다. 이런 여건 속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투쟁 일변도의 과격한 태도를 버리고 제도권으로 들어가 생산적인 과정을 이뤄낼 때 민주화로 가는 터전을 이룰 수 있다. 홍미정 교수
“이슬람주의 견제 위해 미국서 민주화 내걸어 ‘팔’ 반쪽 건국 그칠수도” 유=이슬람주의자들도 저항세력을 뛰어넘어 대안세력으로 조직과 형식을 바꿔야 할 때다. 이슬람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교리논쟁도 벌어져야 하고 성직자의 권한이 과거처럼 절대적이거나 조직이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 이슬람세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돼야 한다. 홍=이스라엘-이집트의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상,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1993년 오슬로 협정,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2003년 중동평화 이정표(로드맵) 등에서 중재를 명분으로 삼은 강력한 이스라엘의 후원자가 미국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편이 돼 이 지역에서 그들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한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변화, 즉 민주화나 발전은 힘들 것으로 본다. 사회/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정리/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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