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피임·동성애 반대
21세기 ‘전통고수’ 시험대
“나는 선대 교황의 뜻을 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방침을 기꺼이 수행할 것임을 단언한다!” 새 교황으로 선출된 요제프 라칭거(78) ‘베네딕토 16세’는 20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축하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첫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새 교황은 라틴어로 진행한 첫 강론에서 “교황에 선출된 뒤 부족함과 동시에 신에 대한 감사를 느꼈다”고 말문을 연 뒤, 가톨릭의 재통합, 다른 종교와의 화합, 교회 개혁 등 자신의 핵심적인 구상과 신념을 간략히 밝혔다. 그는 “우선 과제는 전 세계 가톨릭을 재통합하는 것이며, 세계의 보편적 대의를 위해 다른 종교와 진지하고 열린 대화를 하는 데 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의 보수적 성향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40년 전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천명한 ‘교회 현대화와 개혁’ 정신을 계속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보름 남짓 지구촌 최대 관심사가 된 새 교황 선출을 위해 비밀회의(콘클라베)에 모인 115명의 추기경들은 네 차례의 투표 끝에 19일 독일 출신의 교황청 2인자인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을 세계 11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 265대 교황으로 선출했다. ‘흔들림 없는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는 교리 전파에 힘썼던 90년 전의 베네딕토 15세를 따라 자신을 ‘베네딕토 16세’로 명명했다. 그는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지난 500년 사이 탄생한 두 번째 비이탈리아인 교황이다. 23년 동안 요한 바오로 2세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면서 가톨릭 교회의 방향을 지도해온 그의 이력은 그가 앞으로 보여줄 가톨릭계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명석하고 지적이며 날카로운 신학자이자 40권이 넘는 책을 내놓은 저술가로서 베네딕토 16세의 가치관과 교리 해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신의 충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해방신학, 낙태, 피임, 동성애, 인간복제, 여성사제 서품, 사제의 결혼,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 분명한 반대 견해를 밝혀 왔으며, 이에 대한 찬반도 격렬하게 갈리고 있다. 보수적인 신자들은 교회가 핵심적 가치로 되돌아가는 신호라고 환호한다. 진보적인 신자들은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남아프리카 가톨릭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부의장인 진보적인 성직자 케빈 다울링 주교는 <에이피통신>에 “교회가 빈곤, 동성애, 에이즈, 생명권 보호 등 현대사회의 중요한 논쟁거리들을 개방적으로 반영하고 토론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적인 가톨릭연합의 윌리엄 도너휴는 “새 교황은 개인이 자신만의 도덕을 선택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지지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8일 비밀회의 개막 전 미사에서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아와 욕망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상대주의의 독재’를 향해 가고 있다”며 ‘상대주의’에 대한 반대를 중요한 과제로 거론했다.
비판자들은 또 ‘상대주의 독재’를 비판하는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바티칸이 신자들의 일상과 더욱 괴리되고 교회 내 분열을 부추길 것이라고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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