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정에 기소된 전범 지도자들
‘녹슨 정의의 칼’ 오명
국제재판소 씻어낼까
국제재판소 씻어낼까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된 라도반 카라지치가 31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 섰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판’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르푸르 집단 학살 등의 혐의를 받는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도 지난 14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체포영장이 청구됐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세르게 브라메츠 수석검사는 30일 “보스내아 내전의 희생자들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이날을 기다려왔다”며 의미를 부여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지난 21일 13년만의 도피 끝에 체포된 카라지치는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8천명을 숨지게 하는 등 1992~1996년 반인도적 전쟁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카라지치라는 ‘거물급’ 전범의 체포는 국제정의를 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전했다. 이는 그동안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국제사회가 제대로 된 ‘단죄’를 가하지 못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1993년 설치된 국제유고전범재판소는 그동안 161명을 기소해, 37명에 대해 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핵심 전범 체포는 2006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로비아 대통령에 이어 카라지치가 두번째다. 그나마도 밀로셰비치는 2006년 재판 도중 사망했다. 재판소가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가동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성적이 초라하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 모임인 외교협회(CFR)의 스튜어트 패트릭은 지난 28일 ‘국제정의의 딜레마’란 제목의 글에서 “유고전범재판소는 발칸반도에서 내전이 진행 중이고, 학살이 계속되는 동안 만들어져 초기부터 장애물이 많았다”며 “재판소가 가동되던 때인 1995년에 8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레브레니차 사건이 유엔 안전지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초기부터 자금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지지와 후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해로 창설 10년을 맞는 국제형사재판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 등의 반대로 반쪽짜리 기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 주둔해 있는 미군들이 정치화된 부당한 기소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국제형사재판소를 거부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은 과도한 것이며, 미국의 반대는 형사재판소에 있다기 보다는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국제 재판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최근 수단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로, 여전히 분쟁이 진행 중인 지역의 지도자에 대한 단죄도 논란거리다. 자칫 분쟁을 더 키울 수도 있다는 반박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범재판소의 정치학>의 저자인 미국 프린스턴 대학 게리 바스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전범에 대한 기소가 언제나 분쟁의 한복판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며, 폭군의 군림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며 “어떤 문제가 야기될지라도, 정의를 찾는다는 데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된 라도반 카라지치(오른쪽)가 3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법정에 처음으로 출두하고 있다. 카라지치는 “불법적으로 검거돼 사흘간 납치된 상태에서 나의 권리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변호사 없이) 직접 나 자신을 변론하겠다”고 밝혔다. 헤이그/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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