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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계속되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의 대혼란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그 진앙지다. 그러나 세계 주요 증시의 연초 대비 주가 하락률은 대체로 미국보다 크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대표지수 하락률은 뉴욕증시 다우지수의 3배를 웃돈다. 이는 이들 나라의 경제가 안고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증폭돼 나타난 까닭이다.
특징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국이 처한 ‘잠재적 위험’의 공통점은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던 주택가격 및 원자재가격의 상승세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각국은 미국과 별개로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나름의 처방에 골몰하고 있다. 국가, 권역별로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증폭돼 나타난 배경을 따져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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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은행부실 직격탄 ‘미국 닮은꼴’‘
건설 의존’ 스페인 실업률 급등 홍역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의 충격을 가장 크게 겪는 곳은 영국이다. 금융산업(GDP의 9.4% 차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저금리와 주택 가격 상승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킨 ‘미국식’ 모델을 충실히 따라왔기 때문이다.
영국 주택 가격은 지난 8월까지 10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경기 하락을 이끌고 있다. 영국 5위 모기지업체 노던록은 이미 지난해 9월 예금 인출 사태 뒤 국유화됐다. 지난주에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파장으로 영국 최대 모기지업체 에이치비오에스(HBOS)가 다른 은행에 넘겨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7일(현지시각), 영국 은행 부문의 부실화가 신용경색을 유발하고, 소비와 주택 시장의 하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10년 연속 경제 성장을 자랑했던 스페인과 ‘켈틱 타이거’ 신화의 주인공 아일랜드도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스페인은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이 건설 부문에서 나올 정도로 건설 경기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지난 7월 최대 부동산 그룹 마르틴사-파데사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83억달러에 이르는 이 회사의 부채 탓에 대형 은행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중반 7.95%까지 떨어졌던 실업률은 올해 2분기 10.4%까지 뛰어, 유럽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아일랜드에서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이 부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주의 폭락 속에, 주가지수는 연초 대비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중국, 주가·집값 폭락 ‘대란설’ 꼬리
성장도 주춤 ‘올림픽 후유증’ 우려 커
미국발 금융위기에 관계없이 중국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던 자신감은 사라지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 올림픽 이후 경기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해 10월 고점(6124)에서 70% 가까이 폭락했다. 한때 44배에 이르던 상하이 A주(내국인 투자전용)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17배로 낮아지고 19일 지수가 다시 2000선을 회복했지만 바닥을 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동산값 하락은 불안의 근원이다. 지난 7월 상하이의 신규 분양주택 거래면적은 전년 동기 대비 69%나 줄었다. 평균 시세도 6월에 비해 24%나 떨어졌다. 신규 분양주택 거래는 난징(47%), 항저우(58%), 난창(58%) 등지에서도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주가와 부동산값 하락은 중국 경제 대란설로 이어지고 있다. 주식에서 번 돈으로 부동산을 사고, 부동산이 오르면 그 돈으로 다시 주식을 사는 자산시장의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실이 커지고, 결국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상반기 11.9% 성장했던 중국 경제는 올해 상반기에는 성장률이 10.4%로 낮아졌다. 4분기 연속 내리막이다. 크레디스위스증권은 최근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애초 9.5%에서 9.3%로, 내년 성장률은 9.2%에서 8.8%로 하향조정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러시아, 원자재값 하락 ‘취약성’ 노출
고성장 브라질도 물가불안 등 걸림돌
브릭스(BRICs)의 대표주자인 러시아 증시는 지난 한주 동안 월가발 금융위기에 가장 크게 요동쳤다. 러시아 증시의 에르테에스(RTS·달러 연동) 지수는 지난 16일 11.47% 폭락한 데 이어 17일에도 6.39%나 폭락해 거래가 중단됐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290억 달러를 주식시장과 은행, 에너지 관련 기업을 지원하는 데 투입하기로 하는 구제책을 발표한 뒤 열린 19일에는 22.39%나 폭등했다.
8%대의 경제성장률, 넉넉한 외환보유고나 경상수지 흑자 등을 고려할 때, 러시아가 1998년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다시 겪게 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등 원자재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가 불안의 근원이다. 에르테에스 지수는 지난 5월 최고치(2487.92)에 이른 뒤 꾸준한 하락세를 보여왔다. 19일의 폭등에도 불구하고 에르테에스 지수의 연초 대비 하락률은 43.4%에 이른다.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러시아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성장세를 보인 브라질도 지난 17일 주가가 최근 1년 가운데 최저치로 떨어졌다. 19일 주가는 연초 대비 15.3% 내려앉았다. 광물과 원유 등에 의존하는 브라질 경제는 원자재 가격이 추락할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가인상 억제를 위한 금리인상, 소비 및 투자 위축, 레알화의 고평가, 전력난 등도 경제의 걸림돌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한국, 유가 엎친데 환율폭등 덮쳐
가계빚 ‘눈덩이’ 소비·수출 ‘겹주름’
한국 금융회사들이 미국 시장에 투자했다가 이번 금융위기로 입은 손실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투자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컸다. 외국인들은 거래가 활발한 한국 증시에서 보유주식을 닥치는 대로 팔아치웠다. 9월19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무려 28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달러 수요가 커진 가운데, 외국인들의 주식매도는 원-달러 환율을 폭등시켰다. 연초 936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9월19일 현재 1139원으로 21.7%나 뛰었다.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200억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환율 상승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물가 안정 기대감을 희석시키고 있다. 물가 상승과 금융회사들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로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최근 몇해 동안 집을 사느라 엄청나게 부채를 늘린 가계는 고통을 겪고 있다. 가계의 저축 여력이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가계는 빚을 감당하기 위해 또다시 빚을 얻고 있다. 급등한 집값이 본격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경제 전반에 한바탕 소용돌이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세계경제의 경기 후퇴는 가계와 금융회사들이 이런 잠재위험을 헤쳐나가는 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무역 비중은 2007년 75%에 이르렀고, 2008년에는 더욱 커졌다. 내수가 좋지 않은 가운데 수출까지 나빠져 경기 후퇴의 골이 깊어지면 가계의 위험 대처 능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