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웅(54·사진)
미얀마 민주화운동가 산 아웅 의원…18년째 망명생활
‘제2회 역사엔지오(NGO)세계대회’ 참석차 한국에 온 산 아웅(54·사진)이 10일 기자에게 건넨 명함에는 ‘버마 국회의원 당선자’라는 직함이 적혀 있다. 19년째 당선자 신분이지만 과연 임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가 당선됐던 1990년 5월의 선거는 지금도 굳건한 군사정부가 일찍이 무효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산 아웅도 88년 8월8일 미얀마(버마)에서 일어난 이른바 ‘8888 항쟁’을 거치면서 인생이 바뀐 수많은 미얀마인 가운데 하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군부가 실탄을 발포, 결국 3천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그는 국립병원의 치과의사였으나 시위대에 가담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90년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485명 가운데 100여명이 체포됐다. 군부가 내건 ‘정치활동 금지’를 거부하며 지금까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는 그 해 타이 국경지대로 피신했고 국경을 넘었다. 정부 허가 없이 출국하거나 위법자와 접촉만해도 최고 7년형을 받는다. 자신과 친지들을 위해 35살 피끓던 젊은이는 초로가 되도록 고국 땅에 발을 들인 적이 없다.
미얀마인의 망명을 허용하지 않는 타이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경찰에 붙들리기 서너 차례. 산 아웅은 결국 98년 오스트레일리아로 망명해 국적을 얻었다. 도피 생활 중 만난 부인은 가족과 함께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에 산다. 그러나 그는 타이의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머물며 망명 정치단체와 함께 외교가를 상대로 고국의 민주화를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지면서까지 돌아와야 했냐고 묻자 그는 “나는 인민 대표자다. 교육받은 지식인이며 아직 활동할 수 있는 나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싸우겠냐”며 “내가 싸우지 않으면 우리 아들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망명 단체들의 투쟁이 길어지고 있다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 산 아웅은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를 끝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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