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60주년을 기념하며 7일 모스크바의 포클로나야 언덕에서 열린 ‘참전용사들을 위한 콘서트’에서 군역사 모임 회원들이 나치 군복을 입고 당시 상황을 재연한 공연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
■ 러시아 ‘승전 60돌’ 기념식 53개국 참가 북핵문제 등 세계 주요현안 논의
부시, 민주주의 확산 강조 러 견제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가 53개국 정상이 참가한 가운데 9일 모스크바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60억루블(약 2000억원)을 들인 이번 행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 붕괴 뒤 10여년 동안 사회·경제적 혼란에 빠졌던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알리는 상징적인 무대다. 〈모스크바타임스〉는 50여개국이 러시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들였다는 것만으로도 외교적인 성과이며, 러시아인들은 이번 대규모 의식을 통해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러시아인들이 치른 희생과 승리를 재확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은 행사 하루 전인 8일 속속 모스크바에 도착해 곧바로 ‘짧고 바쁜’ 방러 일정에 들어갔다. 기념행사는 하루에 불과하지만 행사를 전후해 세계 각국 정상들은 개별 또는 집단 만남을 통해 북핵 문제 등 세계 주요 현안을 놓고 활발한 정상외교를 벌인다. 마이클 제프리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 참석국 정상으로는 가장 먼저 지난 5일 모스크바에 온 데 이어 7일에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뉴질랜드, 그리스 등 8개국 정상들이 도착했다. 노무현 대통령,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은 8일 도착했다.
◇ 분주한 개별 정상외교=치안문제를 고려해 행사가 열리는 동안 도시 전체가 사실상 전면 폐쇄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과 53개국 정상과 유엔, 유네스코, 유럽위원회(EC) 등 3개 국제기구 사무총장은 붉은광장에서 러시아군과 참전용사들의 행진을 사열한 뒤 ‘무명 용사의 묘’에 헌화하고 크렘린으로 이동해 전체 정상회담을 겸한 공식 오찬에 참석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 및 러시아 정상과 개별 회담을 여는 것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은 현안에 따라 개별적인 정상회담에 들어갔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과도 개별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라고 〈신화통신〉이 8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8일 낮 12시 CIS(독립국가연합) 정상회의를 연 데 이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모스크바 근처 개인별장에서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며, 10일 러시아-유럽연합(EU) 정상회의도 준비돼 있다. 독립국가연합 정상회의에는 러시아를 비롯해 10개국 정상들이 참석한다.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 등 2개국은 불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9일 푸틴 대통령과 개별 정상회담을 연다. 푸틴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등 10여개국 정상들과 이날 연쇄 단독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 ‘민주주의’ 앞세운 미국의 견제=‘강한 러시아’를 향한 푸틴의 행보에 대한 미국의 견제도 만만찮다. 부시 미 대통령은 “소련이 냉전 기간 동안 동유럽과 중부 유럽 국가들을 속박한 것은 역사상 최대 오류”라고 비난하며 정면 공격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모스크바의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앞서 7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방문해 “동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2차대전의 승리는 또다른 제국(소련)의 철권통치를 가져왔으며 2차대전 전승기념일은 파시즘의 종말을 기념하지만 압제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며 소련의 정책을 비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그는 또 최근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키르기즈스탄에서 일어난 ‘혁명’에 미국이 개입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 확산’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모스크바 방문 직전 라트비아를 방문한 것도 러시아를 겨냥한 의도적인 행동이다. 라트비아는 2차대전 뒤 소련군 진주로 독립이 좌절됐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의 일원이다. 부시는 또 전승기념 행사 참석 직후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며 이번 행사를 보이콧한 그루지야를 방문한다. 부시 대통령은 8일 저녁 열린 정상회담에서 그루지야에 배치된 러시아 군기지 폐쇄 문제, 발트해 3국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소련 지배 사과 문제 등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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