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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버뮤다 등 ‘OECD 금융거래기준’ 수용 잇따라
스위스를 비롯한 대표적 역외 금융센터들이 ‘은행 비밀주의’의 빗장을 풀기로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조세 피난처가 사실상 문을 닫고 있다. 다음달 2일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더 큰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14일 모나코 정부는 “외국 조세당국과 협력해, 더 투명한 금융거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모나코는 ‘가장 비협조적인 조세 피난처’란 혹평을 들어왔던 나라다. 모나코 정부 대변인은 “우리의 희망은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블랙)리스트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외국 조세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세금 탈루 혐의를 받는 고객의 예금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앞서, 전세계 조세 피난처의 대표 주자였던 스위스도 백기를 들었다. 13일 스위스 연방정부는 “국제적 탈세 사건에 대한 조사가 있을 때 다른 나라 당국과 협조할 것이며, 은행비밀법도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정부의 이런 조처에 대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3일 “조세 피난처의 종말이 시작됐다”고 환영했다. 스위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자산은 2조달러(약 2970조)에 이른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따르면, “전세계 각국 해외예금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국제 로펌 스타이크먼 엘리엇의 리처드 헤이는 “스위스의 항복은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모나코와 스위스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의 조세 피난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도 13일 탈루사건에 대한 더 적극적 협조를 약속했으며, 싱가포르와 리히텐슈타인, 영국령의 버뮤다, 저지섬과 건지섬,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 국경의 안도라 등도 최근 잇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금융거래 투명성 관련 기준을 채택하는 등의 조처를 발표했다. 카리브해의 케이맨제도 역시 다음달 1일 7개 북유럽 나라들과 조세정보 교환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다.
이처럼 조세 피난처들이 속속 백기를 든 것은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더 많은 과세에서 엄격한 금융거래 적용까지 혹독한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전세계 역외 금융센터들이 마지못해 다른 나라 조세당국과 협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리히텐슈타인과 안도라, 모나코만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신문은 또 지난해 리히텐슈타인에 대한 독일의 탈세수사, 스위스 유비에스(UBS) 은행에 자국 고객정보를 요구한 미국의 압박 등이 조세 피난처들을 압박하는 ‘전주곡’이 됐다고 전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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