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김도형 특파원
도쿄 니혼바시 닌쿄초에 있는 한 중국 요리집,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이 음식점의 창문에 붙은 한장의 안내문이 손님의 발길을 끈다. 6개짜리 군만두를 지난 16일부터 4월30일까지 한시적으로 100엔(약 1430원)에 판다는 선전문구다. 평소 가격(390엔)의 1/4의 파격세일에 맛도 좋아 추가 주문해 포장해가는 고객도 많다고 한다. 평일 오후 5~7시에는 생맥주와 소흥주를 절반 가격으로 제공해 두사람이 1천엔대로 군만두를 안주 삼아 한잔 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 경기후퇴 속에 점점 더 강해지는 소비자의 ‘절약심리’를 잘 포착해 불경기 속 호황을 맞이하는 업체들이 주목 받고 있다. 이들은 싼 가격을 무기로 특별한 전략을 개발해 불황의 시대에 성공 비즈니스를 이끌고 있다. 수도권에서 점포수를 확대하고 있는 슈퍼마켓 ‘더 프라이스’는 양파 1개 9엔, 방어 1마리 77엔 등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규격 외 생선을 한꺼번에 사들이거나 특정 농가와 계약해 유통마진과 비용을 크게 줄인 결과다. 2월 전국슈퍼마켓 매출이 지난해 2월에 견줘 5.4% 줄어든 판매 부진 속에 이도요카도와 이온 등 대형 슈퍼마켓 체인도 이달부터 각각 2000개 넘는 품목의 가격을 인하했다.
신생 통신업체인 ‘이 모바일’은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지 2년도 안 됐지만 기발한 판매전략이 주효해 월 계약자 순증가자 수가 업체 1위인 소프트뱅크를 위협할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가전양판점에서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2년 이상 장기계약하면 5만엔 정도의 미니 노트북을 1엔~100엔 정도에 살 수 있게 했다. 또한 지난 2월부터 월 기본서비스요금을 780엔으로 200엔 낮췄다. 저가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는 최근 900엔대 청바지를 내놓았다. 저렴하다는 평을 들어온 기존 가격의 1/3~1/4 수준이다.
1990년대 초반 거품 경제 붕괴 이후에도 ‘100엔숍’ 등 절약 비즈니스가 가격 파괴를 내걸고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가격인하는 제한적이었고 절약 소비하는 한편으로 고급 명품 등에 열광하는 일본 특유의 소비행태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부유층까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최근의 상황과는 다르다.
총무성 조사를 보면 전년 동기 대비 소비지출액이 올 1월까지 11개월 연속 줄었다. 지난해 봉급 생활자의 연수입이 10년 만에 300만엔 이하로 떨어지는 등 가계수입이 줄어들자 ‘사지 않고, 갖지 않고, 버리지 않는’ 생활의 지혜가 우선시되고 있다. ‘소비 3무시대’를 맞아 휴대전화 수리 의뢰 건수도 지난해보다 2~3배 늘었다. 3만~6만엔 정도하는 새 휴대전화 단말기를 사지 않고 2천~5천엔의 수리 비용을 들여 계속 사용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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