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경제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금융산업의 탐욕에 분노한 수천명의 시위대가 런던 중심가를 가득 채웠다.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들의 회담을 하루 앞둔 1일, 런던 시내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은행가들을 규탄하며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뉴욕 월가와 함께 세계 금융산업의 심장부로 꼽히는 런던 금융가 시티에는 이날 경찰 추산으로 4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였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시위대는 이날을 ‘금융 바보들의 날’로 선언하고, “유일한 해법 혁명” “기후, 정의, 평화” “돈을 없애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빈곤과 불평등, 실업에 항의하는 이들, 환경주의자들, 반자본주의 세력, 무정부주의자, 반전주의자 등 새로운 대안의 세계를 소망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연대해 시위에 참여했다.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에 버금가는 진보세력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시위대는 영국중앙은행을 향해 행진하며, 금융위기로 집을 차압당한 이들과 실업자들, 예금과 연금을 날린 이들이 시위에 동참해 금융기구를 포위하자고 요청했다. 금융가에 모인 시위대는 “은행들을 공격하라”고 외치며 행인들에게 “은행가들을 처형하라”는 팸플릿을 나눠주기도 했다. 로열스코틀랜드은행(RBS) 본사의 유리창은 공격을 받아 깨졌다.
한 시위 참가자는 비비시 방송에 “너무 큰 탐욕으로 얼룩진 세계의 현실에 사람들이 분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 왔다”고 말했다. 3주 전 정보기술(IT) 분야 일자리에서 해고된 네이선 딘(35)은 <에이피>(AP) 통신에 “일자리 하나를 찾아가면 이미 150명이 와 있는 상황”이라며 “생전 처음으로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모기지도 갚을 수 없고, 신용카드 대금도 연체돼 빚더미에 올랐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잃은 건설노동자인 스티브 존스턴(49)은 “모든 것이 엉망이 된 것 같다. 은행가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챙겼고, 의원들도 그들의 주머니를 채웠다”고 말했다.
경찰은 거리 곳곳을 에워쌌고, 금융회사들 근처에는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회사들의 경고를 받고 은행 직원들은 유니폼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채 근무했다. 시위 참가자 중 11명이 교통 방해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시위대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2일에도 대규모 시위에 나설 예정이며, 경찰은 최대 6천명의 경찰을 도심 주변에 배치할 계획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