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원전 연료 45% 차지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기 위해 배치됐던 옛 소련의 핵무기가 지금은 미국 가정의 불을 밝히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0일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약 10%가 해체된 핵무기에서 추출한 핵연료에서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전력의 6%를 생산하는 수력과 태양에너지·풍력·지열(3%) 등을 모두 합한 수치보다 많은 양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원자로 연료의 약 45%가 러시아에서 실려온 핵무기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핵무기 재활용 원리는 간단하다.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민수용 저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면 된다. 90% 이상 고농축한 동위원소 ‘U-235’를 5%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으로 전환시켜, 전력 생산 원자로의 연료로 쓰는 것이다. ‘메가톤에서 메가와트로’란 애칭을 지닌 이 프로젝트는 탈냉전의 부산물이다. 미국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프로젝트는 수천개의 핵탄두를 줄이기로 한 미국과 러시아 간 핵무기 감축 협정의 일부였다.
<뉴욕 타임스>는 “전력 생산 업체가 미국인 전력 소비자들을 겁먹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러시아 폐핵무기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해 공급해온 사실을 공표하길 꺼렸다”며 “과거 미사일 연료가 이젠 미국인 가정의 불을 밝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가톤에서 메가와트로’ 프로젝트는 2013년 만료된다. 폐핵무기 관련 업계는 새달 5일 시효가 끝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의 후속 협정 체결에서 많은 수의 핵무기의 감축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쓸 수 있는 저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는 비용은 우라늄 광물을 곧바로 연료화하는 비용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폐핵무기는 업계의 거대하면서도 손쉬운 에너지원인 셈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내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폐핵무기 공급의 증가를 원하는 업계의 구세주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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