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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암만통신] 이슬람 명예 좀먹는 ‘명예살인’

등록 2005-06-03 18:14수정 2006-04-15 21:49

이성과 대화만 해도 불륜
여동생·딸 죽여도 면죄부
보수적 요르단 특히 심해

지난달 31일 암만 형사법원은 지난해 10월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중인 한 남성 수감자에게 의도적 살인이 아닌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사고’라며 6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요르단 중부 따필레 지역 출신인 이 청년은 두 아이 엄마인 여동생이 남편이 집에 없는 1년 동안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살해한 뒤 주검에 등유를 뿌려 불태운 혐의를 받아 왔다. 그러나 법원은 “살해된 여성이 불륜을 저질러 오빠를 분노케 했으며, 그에게 심각한 심적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아랍·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부족국가로 꼽히는 요르단에선 가족들이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여성을 살해하는 이른바 ‘명예살인’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지만, 법은 사실상 이를 용인하고 있다. 요르단대학 여성문제연구소의 아말 알카루프 교수는 “해마다 20건 정도의 명예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 형법 98조는 “간통처럼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목격한 뒤 심한 분노에 이끌려 저지른 범죄는 최고 1년 미만, 최소 3개월의 가벼운 형량을 언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슬람법은 간통죄 처벌에 엄격하다. 간통한 기혼남녀는 죽을 때까지 돌팔매질을 받아야 하며, 불륜을 저지른 미혼남녀는 80대의 매를 맞아야 한다.

한 이슬람 사원의 이맘(예배 인도자)인 알리는 “샤리아(이슬람법)가 규정하는 간통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벼운 신체적 접촉을 하거나 심지어는 여성을 흘겨보는 것까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 국가에선 여성이 남성과 악수하는 일조차 매우 드물다.

2003년에는 한 아버지가 3주간 가출한 뒤 돌아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은 딸을 살해한 적이 있고, 결혼식 피로연에서 외간 남자와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오빠가 신부를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4월25일에도 한 남성이 올해초 이혼해서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동생을 총으로 살해했는데, 친구의 휴대폰에 여동생의 사진이 저장된 것을 발견한 게 발단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 사이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아랍어 포털 사이트인 알아라비아닷컴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중 63%는 ‘명예살인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라고 답했다. 25%는 ‘사회적 윤리와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긴 하지만 사회적 중죄’라고 답했다. 반면 ‘아랍, 이슬람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는 긍정적인 활동’이라고 보는 사람은 12%였다.


요르단대학 캠퍼스 곳곳에서도 남녀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세대들은 과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연애를 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도 명예살인의 뿌리 깊은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요르단의 현실이다.

암만/주정훈 통신원 amin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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