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볼리비아인들이 가정용 엘피가스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시위대들은 영국의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P)과 스페인의 렙솔 등 다국적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7개 유전을 접수했다. 라파스/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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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국유화 시위 확산…좌파 야당 조기 대선 요구
사임 뜻 메사 대통령도 “대선 안치르면 내전” 경고 가스 국유화 요구에서 촉발된 볼리비아의 시위가 계속 확대되면서 원주민 농민·노동자가 주도세력이 된 좌파 정권 탄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시위를 이끌고 있는 코카 재배 농민조합과 야당인 ‘사회주의로의 운동’(MAS) 지도자인 에보 모랄레스(43)는 8일 “국민의 다수가 나라를 다스릴”시대가 왔다며 대통령 승계 1순위자인 호르만도 바카 디에스 상원의장 등의 사임과 조기 대통령 선거를 촉구했다. 이미 사임의사를 밝힌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도 지난 7일 텔레비전 연설에서 즉각 대선을 치르지 않으면 내전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위대가 수도 라파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 전국이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으며, 이로 인해 메사 대통령의 사임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의회는 9일 라파스에서 600㎞ 떨어진 수크레에서 회의를 열 예정이다. 그의 사임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디에스 상원의장, 마리오 코시오 하원의장 순으로 대통령 직을 승계하며, 이들이 사퇴할 경우는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 대법원장이 과도정부 수반을 맡아 5개월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들은 모두 산타 크루스 출신의 지배 계층을 이루고 있으나, 의회는 상하원 모두 민족혁명운동당(MNR)과 사회주의로의 운동당 등 좌파계열이 지배하고 있다. 앞서 작년 12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원주민ㆍ농민을 중심으로 한 신진 좌파세력이 압승해 원주민들의 제도 정치권 진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3주간 계속된 시위는 규모가 수십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일부 급진파의 시위”라는 지배 계층의 비난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또 시위의 요구 수준도 메사 대통령 등 부르주아 정치가는 물론, 대중의 생계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부르주아지에게 죽음을”, “노동자에게 권력을” 등 혁명적인 내용의 구호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시설, 유전과 가스전을 점령하고 봉쇄하는 시위대의 직접적인 행동도 늘어났다. 지난주말 산타 크루스 북부 지역에서는 7곳의 유전이 농민들에 의해 점령돼 폐쇄됐고, 이런 움직임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서 지역으로 나뉘어 균형을 유지하던 것이 깨진 계기는, 지난주 가스전의 중심 지역으로 부유한 백인 지배층의 거점인 동부 산타 크루스 지배세력이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청년단체가 농민 시위대를 공격한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산타 크루스의 자치를 지지했던 세력들이 가스산업의 국유화를 요구하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으며, 산타 크루스의 중심지인 과라니 지방의회는 산타 크루스가 볼리비아로부터 분리한다면 과라니는 산타 크루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번 시위의 지도자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모랄레스는 아이마라 인디언으로 중부지방 코카재배 지역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그는 코카 재배 농민을 이끌고 미국이 지원하는 정부의 마약 근절 정책에 맞서 싸우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했으며,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대사가 모랄레스 같은 인물을 뽑을 경우 미국은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지지율이 높아져 2위에 오르는 등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 인구 880여만명의 볼리비아는 인디오인 퀘추아와 아이마라인이 각각 30%, 25%에 이르고 있고,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즈 30%, 백인이 15%를 차지하고 있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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