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년 마르코스 대통령 축출한 ‘피플 파워’ 의 정신적 지도자
필리핀 ‘피플파워’ 혁명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하이메 신 추기경이 21일 선종했다. 향년 76.
2003년 11월 고령으로 마닐라 교구장에서 은퇴하면서 “내 가장 나은 재능을 하느님과 국가를 위해 바쳤던 것에 감사한다. 내가 잘못 이끌었거나 상처 준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을 남겼던 그는 필리핀의 ‘도덕적 나침반’‘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불려왔다. 아킬리노 피멘델 필리핀 상원의원은 “우리는 영적인 지도자를 잃었으며,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고 애도했다.
신 추기경은 지난 몇년 동안 신장 질환과 당뇨병 등을 앓아왔으며 지난 4월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추기경단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신 추기경의 대변인인 훈 세스콘 신부는 추기경이 지난 19일 저녁 고열로 입원했으며 여러 장기들의 장애를 겪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주검은 마닐라 성당에 옮겨졌으며 구체적인 장례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신 추기경은 지난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와 결별한 피델 라모스 당시 군 참모차장과 후안 폰세 엔릴레를 보호하기 위해 마닐라시의 경찰과 군 본부를 포위하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것은 부패와 인권침해로 국민들의 원망을 받고 있던 마르코스를 수백만 국민들의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축출시킨 ‘피플 파워’ 혁명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또 전 세계 곳곳에서 독재정권들을 붕괴시키는 선구적 사례가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독재자를 몰아낸 뒤에도 필리핀의 부정부패 등 정치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자 그는 “우리는 ‘알리바바’를 몰아냈으나, 40명의 도둑들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신 추기경은 2001년에도 부패와 실정으로 논란에 휩싸인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축출하는데 기여했으나,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지지하던 빈민층의 비판도 받았다. 신 추기경은 이에 대해 이례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권력자들에게 희생되도록 교회가 의무를 태만히 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그의 말 한마디는 대통령 등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신 추기경은 특히 부패를 혐오했고, 강론 등을 통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 정치인을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강하게 옹호했으며, 종교적으로는 산아제한 반대를 굽히지 않는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산아제한 정책을 도입하려는 신교도 출신 피델 라모스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으며, 94년에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등 솔직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혀왔다.
최근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결과를 조작했다는 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가 폭로돼 시위가 계속되고, 21일 이에 대한 의회 청문회가 열리는 민감한 시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필리핀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관심사다.
신 추기경은 중국계 상인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16자녀 중 14째로 태어나 11살에 신학교에 입학해 26살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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