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엄청나다. 그렇지만 멋진 일입니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이 100억엔이라니” “남자중의 남자이다.”
재일동포 2세 경영인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54·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 사장이 3일 3·11도후쿠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당한 이재민을 위해 써달라며 개인돈 100억엔(1291억원)을 내놓은 데 대해 일본 최대 인터넷포털인 야후재팬에 올라온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손 사장은 또 2010년도부터 은퇴할 때까지 소프트뱅크 대표(2009년 기준 연봉 1억8000만엔)로 받는 보수 전액을 기부한다고 소프트뱅크쪽은 밝혔다. 기업차원에서도 소프트뱅크는 10억엔을 기부하고 자회사인 야후재팬도 3억엔을 낼 계획이다. 또 야후를 통해 모금한 13억엔중 3억엔을 일본 적십자사에 기부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개인 기부 최고액은 저가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 대표 야나기 다다시 대표 등이 낸 10억엔이다.
손 대표는 재일동포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 중 한명으로 꼽힌다. 일본 프로야구 구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너이기도 한 그는 2011년 현재 81억달러(약 6723억엔)의 개인재산을 보유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뽑은 일본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의 이번 기부는 한국 제1의 기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건의 삼성중공업 책임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손 사장은 얼마 전 일본 공영 <엔에치케이>에 출연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평소 트위터를 통해 고객들과 자주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한 손 사장은 “손씨는 개인적으로 의연금을 내놓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준비중입니다”라고 코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이번에 사재를 털어 10억엔을 내놓은 야나기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중저가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운영회사) 대표는 2009년 3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를 빌미로 파견사원들을 대량해고한 소니와 도요타 등 대기업을 겨냥해 “이들 기업은 국민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유니클로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도 남다른 열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통신회사, 프로야구단 등 110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소프트뱅크 그룹 지분의 21.9%를 보유한 손 대표는 어릴 적부터 보통 사람과 다른 면모를 보여왔다. 1947년 일본으로 밀항한 손삼헌씨의 4남중 차남으로 태어난 손씨는 어린시절 시궁창 냄새가 떠나지 않은 후쿠오카 조선인 마을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사채놀이와 파친코 등으로 외제차를 여러대를 굴릴 정도로 성공해 손씨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1973년 고교 시절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넓은 세계로 나가기로 결심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4주간 어학연수를 했다. 그 다음해 일본 고교를 중퇴해 미국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그곳에서 고졸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해 4주만에 미국 고교를 자퇴했다. 고졸검정고시 시험을 보던 중 그는 난데없이 “이 문제는 일본어라면 반드시 풀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시험감독관에게 미-일사전의 대출과 시험시간을 요청했다. 당황한 감독관은 상사에게 상의하고 다시 상사는 주지사와 협의했다고 한다. 주지사는 시험종료시간을 정하지 않은채 “사전을 보는 데 적당한 시험만큼 시간을 연장한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아 손씨는 시험에 합격했다.
손씨의 이런 도전정신은 고교시절 일본맥도날드 창업자로 유명 실업가인 후지타 덴(1922~2004)을 아무런 약속없이 찾아가 면담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당연히 후지타 회사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굴하지 않고 몇번이고 찾아가자 결국 후지타는 사장실로 그를 불러들였다. 그곳에서 “앞으로 미국에 갈 생각인데 미국에서 무엇해야 하느냐”고 묻자 후지타는 컴퓨터 관련 분야를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그 뒤 성공한 손씨가 후지타를 식사에 초대한 자리에서 손씨가 당시 자신을 찾아온 고등학생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라고 감격해서 손씨의 컴퓨터 300대를 발주했다고 한다.
19살 때 “20대에 이름을 알리고, 30대에 군자금을 최저 1000억엔 모아서, 40대에 한바탕 승부를 걸어, 50대에 사업을 완성시켜, 60대에 사업을 후계자에게 넘겨준다”라는 인생 50년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54살인 손씨의 사업인생을 보면 그의 결심은 거의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
22살 때인 1977년 사프에 자신이 개발한 자동번역기를 팔아 만든 1억엔을 밑천으로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유니온월드’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한 그는 1980년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와 1981년 일본소프트뱅크를 설립해 본격적인 사업전선에 나섰다. 1996년엔 미국 야후와 합작으로 야후재팬을 설립하고 그해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과 함께 <아사히신문>이 대주주인 아사히텔레비전 주식 21%를 매집하기도 했다. 아사히텔레비전 주식은 결국 <아사히신문>의 반발로 결국 도로 신문사쪽에 팔아넘겼지만 일본사회에 그의 존재감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됐다.
일본사회에서 그가 우뚝 솟은 것은 2005년 도쿄모엔티티 등 몇몇 통신회사가 독과점하고 있는 휴대전화기 사업에 진출하고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면서부터이다. 파격적으로 싼 할인가격을 적용한 소프트뱅크는 2007년 5월 휴대전화 월간 순수 증가대수 16만대를 기록해 엔티티도코모 8만대, 에이유 14만대를 제치로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서는 것을 계기로 도약했다. 애플과 손잡고 아이폰을 독점계약 판매해 소프트뱅크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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