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망명 뒤 공산주의 비판
귀국·재망명…85년 생 마감
귀국·재망명…85년 생 마감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내 작은 참새”라고 부르며 아꼈던 스탈린의 외동딸이 85살의 나이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0년대 냉전시대에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파란을 일으켰으며, ‘스탈린의 딸’로서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29일 <에이피>(AP) 통신은 스탈린의 딸인 라나 피터스(러시아 이름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 스탈리나·사진)가 지난 22일 위스콘신주 리칠랜드 카운티의 요양원에서 결장암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일생 동안 세 차례 결혼했는데, 마지막 결혼 상대였던 미국인 건축가의 성을 따서 피터스라는 미국 이름을 썼다.
스베틀라나를 포함해 스탈린 자녀들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이 레닌 사후 실권을 장악한 때였던 1926년 태어났다. 스베틀라나의 어머니는 남편인 스탈린과 정치적으로 불화한 끝에 1932년 자살했다. 두 명의 오빠가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과 알코올중독으로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스베틀라나는 아버지 스탈린한테 각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반유대주의자였던 스탈린이 딸의 첫사랑이었던 유대인 애인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추방하면서 사이가 벌어졌다. 스탈린이 1953년 뇌졸중으로 숨지기까지 이들 부녀는 계속 싸늘한 관계였다.
스베틀라나는 소련에서 두 차례 결혼이 이혼으로 끝난 뒤 ‘마음의 남편’으로 여겼던 인도인 공산주의자 연인이 숨지자 인도 주재 미국대사관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그는 1967년 망명 뒤 소련 여권을 공개적으로 불태웠고 “오랫동안 부정당했던 자기표현의 권리를 찾아서 미국으로 왔다”며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했다. 또 아버지 스탈린에 대해서도 “도덕적, 정신적 괴물”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베틀라나의 삶과 말은 불안정하고 비틀거렸다. 그는 소련에 남매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망명해 냉전 시절 미국 정치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는 아이콘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가던 1984년에는 소련으로 돌아가 “미국에서 단 하루도 자유롭지 못했다”며 미국 체제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랬던 스베틀라나는 이내 미국으로 되돌아왔고, 말년의 대부분은 위스콘신주 시골에 은둔해 살았다.
스베틀라나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도 소련에도 속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을 털어놨다. 아버지 스탈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나는 평생토록 내 아버지 이름에 갇힌 정치범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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