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크레믈 인근 시위…정부, 시내에 치안유지군 배치
미·유럽 “개표과정 문제 심각”…푸틴 “인적쇄신 있을 것”
미·유럽 “개표과정 문제 심각”…푸틴 “인적쇄신 있을 것”
“그들은 사기꾼, 도둑당이다.”
러시아의 대중적인 반부패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는 총선 결과가 발표된 5일 모스크바 거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발니 곁에는 통합러시아당의 선거 조작에 항의하는 5000~1만명의 시위대가 함께 있었다. 지난 몇년을 통틀어 가장 큰 푸틴 반대 시위였다. 경찰이 대통령 관저와 중앙정부 청사가 있는 크레믈 근처에서 300여명을 체포한 뒤에도 시위대는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러시아 당국은 6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모스크바 시내에 치안유지군인 내무군을 배치하고 경보 수준을 높였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모스크바 경찰국도 “허가받지 않은 어떤 시위도 법에 따라 엄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은 푸틴을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했다.
지난 4일 총선에서 가까스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푸틴당’이 부정선거 역풍을 맞고 있다. 제2당이 된 공산당은 “현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더러운 일”이라고 분노를 표시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성난 시위대는 “푸틴 없는 러시아”를 외치며 집권 통합러시아당을 비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선거는 공정하고 민주적이었다”고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내년 3월 통합러시아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6일 “(대선 뒤에) 당연히 정부 내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라며 대폭 개각과 주지사들의 교체를 예고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여러 기관은 일제히 시위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총선에 200여명의 선거감시단원을 파견했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개표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당국이 여러 단계에서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선거감시 결과를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러시아 유권자들은 선거 조작에 대한 철저한 조사 결과를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와 영국 <비비시>(BBC) 등도 푸틴의 지지율 하락을 앞다퉈 비중있게 보도했다.
국내외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며 집권당이 수세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푸틴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아 총선 부진 위기를 모면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신흥시장 책임자인 팀 애시는 “푸틴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을 (차기) 총리직에 앉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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