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 사망 발표문 보니
“김정은 동지 영도따라 억세게 투쟁해야”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문 판박이
“김정은 동지 영도따라 억세게 투쟁해야”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문 판박이
19일 북한 매체들이 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문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을 뜯어보면 몇가지 특징이 보인다.
발표문은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했다고 사망 소식을 알리고, “김정일 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최대의 손실”이라고 애도한다. 이어 김 위원장의 업적을 길게 소개한 뒤 “초강도의 현지지도 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열차에서 순직하시였다”고 김 위원장의 사망 원인을 전한다.
다음 대목은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김정은 동지의 영도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키고,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천추만대에 빛내여나갈 것”이라고 김정일 유훈통치에 대한 충성심 고취에 나선다.
발표문은 “김정일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거룩한 존함과 자애로운 영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여 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런 구성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문과 판박이다. 논리 전개는 물론 표현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에도 “김일성 동지의 뜻밖의 서거는 우리 당과 혁명의 최대의 손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김정일 동지가 서 있다”,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김일성 동지는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을 것” 등 이번 발표문과 동일한 문장이 쓰였다.
북한이 김 주석 사망 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당분간 후계자인 김정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을 받드는 ‘유훈 통치’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문에는 없던 내용도 있다. 김 위원장의 업적으로 “그 어떤 원수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었다”고 ‘핵보유’를 든 대목이다. 북한이 그동안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핵협상 의지를 과시해온 것과는 미묘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두고봐야 하겠지만, 북한이 핵보유를 김정일의 유훈으로 강조하게 될 경우 이후 북-미 핵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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