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들 ‘머독 도청사건’ 계기로 “성차별 보도 제동” 요구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은 지난 3월 온라인 뉴스를 통해, 6명의 축구선수들이 12살밖에 안된 소녀 두명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성폭행의 성격을 ‘난교 파티’로, 피해 소녀들을 ‘롤리타’로 표현해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이 매체 대변인은 “소녀들도 성관계를 원했기 때문에, 선수들 모두 결국 풀려났다. 또 이후 추가로 피해 소녀를 인터뷰해 (소녀들도 성관계를 원했다는) 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아주 동정적인 기사를 두 페이지나 보도했다”고 항변했다.
여성 연예인의 경우, 피해는 훨씬 더 일상적이었다. 영국 출신 팝페라 가수 샬롯 처치(25)는 소녀 시절 타블로이드 신문 때문에 겪었던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더 선> 웹사이트의 시계가 동의에 의한 성관계가 가능한 나의 ‘열여섯번째 생일’을 카운트다운 하고 있었다”며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여성폭력근절’ 등 영국 여성단체연합은 언론의 취재 관행과 윤리를 조사하는 ‘레베슨 청문회’에 이참에 이런 성차별적이고 위험한 보도를 일삼는 행태에도 제동을 걸라고 압박했다고 <가디언>이 29일 보도했다. ‘레베슨 청문회’는 루퍼트 머독 소유 매체들의 불법 전화 해킹 사건을 계기로 지난 7월부터 언론 조사를 벌여왔다.
여성단체들은 특히, 미디어가 성폭력 위험에 처하기 십상인 어린 여성들에 대해 ‘도발적’이라거나 ‘나이들어 보인다’는 편견을 조장해 가해자들이 이를 ‘방어논리’로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또 성폭력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옷·음주 여부·가해자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교묘하게 피해자를 비난하는 근거로 작용한다고 꼬집었다.
여성단체들은 “만일 레베슨 청문회가 여성에 대한 미디어의 그릇된 묘사를 조사하지 않는다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언론인들에게 여성 폭력 보도와 관련한 법률에 대한 학습을 의무화할 것과 법을 어긴 언론인에 대한 제재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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