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 “본국서 고문 우려”
영국 교도소에 수감중인 이슬람 급진주의 성직자를 본국으로 추방하려던 영국 정부의 시도에 제동이 걸렸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7일 유럽인권재판소가 “고문으로 얻은 증거로 재판받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일명 ‘오사마 빈라덴의 유럽 오른팔’ 아부 카타다(52·사진)를 요르단으로 추방하려던 영국 정부를 저지했다고 보도했다.
요르단 베들레헴 근처에서 태어난 카타다는 1993년 영국으로 망명한 뒤 런던 북부 핀즈베리파크의 이슬람 사원 등지에서 이슬람 선동가로 입지를 다졌다. 그는 1999년과 2000년 두건의 폭탄 테러에 연루돼 요르단에서 궐석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2002년 영국에서 알카에다 용의자로 처음 수감됐다. 영국 대법원은 카타다를 본국 추방하기로 한 영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으나, 카타다는 요르단에서 고문을 받게 될 거라며 유럽인권재판소에 항소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카타다가 테러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그의 동료에 대한 고문으로 얻어진 것”이라며 “요르단에서는 고문과 고문에 의해 얻어진 증거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요르단 추방은) 정의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에 대해 외국인에 대한 영국의 본국 추방 정책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 유럽인권협약 6조에 대한 위반이라는 점을 인정한 유럽인권재판소의 첫 판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유럽인권재판소는 국제적인 테러 용의자를 추방하기 위해 영국이 요르단으로부터 ‘고문이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외교적인 보증을 받은 조처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테리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은 “법원의 판결에 실망했다”며 “카타다 등 외국인 테러 용의자들을 추방하기 위한 모든 법적인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현재 9·11 테러 이후 자국에 남아 있는 테러 용의자들을 알제리와 이집트 등 본국으로 추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