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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국내에서는 ‘나꼼수’ 게시판에 올라온 비키니 시위 사진이 논란이었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지난 1일에는 남성 지지자까지 나서 정 전 의원 팬카페에 누드사진을 올리며 “식상한 1인시위는 갔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이미 4년 전부터 ‘상반신 나체 시위’ 논란을 촉발시킨 급진 페미니스트 단체가 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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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다운 여성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도심 한가운데서 윗옷을 벗는다. 곧이어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고 싶다’는 푯말을 든 채 쪼그리고 앉는다. 무슨 성인 상황극의 한 토막인가 싶지만, 이 도시의 ‘공공화장실 부족’에 항의하기 위한 급진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 단체의 시위다.
이 도발적인 시위 방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국내에서는 최근 ‘나꼼수’의 정봉주 전 의원 비키니 응원이 논란이지만, 지난달 25~29일(현지시각)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이 단체의 ‘상반신 나체 시위’였다. 세계 정치·경제 실세들이 모여 자본주의의 위기와 청년실업 재앙을 논의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의 ‘페멘’(FEMEN) 회원들이 “빈곤층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돌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사실, 페멘은 외신기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 또 페멘’ 할 정도로 유명한 여성단체다. 국내에서는 주로 ‘사진기사’로 보도되곤 한다. 혹자는 ‘우크라이나에 가면 슈퍼모델이 밭을 간다는데, 페미니스트 활동가도 다 팔등신이냐’는 우스갯소리로 페멘의 시위를 볼거리만으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페멘은 미녀들의 한낱 치기로 치부하기에는 간단치 않은 포부와 약력을 선전하는 국제적으로 논쟁적인 단체다.
우크라이나의 급진 여성단체 페멘 회원들이 상반신 나체 시위를 하고 있다. FEMEN 홈페이지 캡쳐.
이탈리아·스위스서도 출몰하며 저항
페멘은 2008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역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의 경제침체 속에서 ‘여학생의 8분의 1’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한다는 추산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성매매 관광’ 국가다. 외국 남성들이 2~3일 일정으로 단체관광을 와 나이트클럽에서 젊은 여성을 고른 뒤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코스처럼 돼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페멘이 “우크라이나 여성은 매춘부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조직을 꾸렸다. 풀타임 활동가인 인나 솁첸코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정부는 성매매 관광을 개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비판했다. 매춘이 불법인 나라에서 시내 중심가에 수많은 성매매 여성이 있는데 경찰이 아무 제지도 하지 않으며, 외국 남성들은 비자 없이도 입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페멘은 성매매 반대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젊은 여성들의 리더십과 지성·도덕 개발, 우크라이나 시민운동의 새로운 기준 정립, 나아가서는 2012년 의회 진출까지 ‘목표’로 하는 꿈이 큰 단체다. 또 유럽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여성주의 운동단체가 되어, 2017년 여성혁명을 조직하겠다는 ‘글로벌한’ 포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페멘의 활동은 그래서 우크라이나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위스 다보스처럼 세계 각지에서 ‘출몰’해 다양한 이슈에 대해 가슴을 드러내놓고 저항한다. 지난 1일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2014년 벨라루스 하키월드컵 반대 시위를 벌였고, 지난해 11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단체의 근거지인 키예프에서도 다양한 국제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인도대사관 앞에서 인도 정부의 중앙아시아 국가 여성에 대한 비자규정 강화에 항의했으며, 지난해 3월에는 일본 대지진을 위로하는 ‘누드 사무라이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집권 100일 기념 ‘표현의 자유 억압’ 항의, 신종플루 공포 극복 캠페인 등 시위는 국제적인 ‘눈길’을 사로잡고 ‘입길’에 올랐다.
‘구호’가 훌륭하기는 한데, 페멘은 도대체 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반나체’로 저항하는 것일까? 이 단체의 설립자인 안나 후촐은 “반나체 시위는 이 나라에서 우리 얘기를 듣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단순히 펼침막만 들고 시위를 하면, 우리 얘기를 알릴 수 없을 것”이라며 ‘홍보효과’를 노린 전략임을 숨기지 않았다. 페멘에는 현재 평균 20살 무렵의 여성 활동가 300여명이 활동중인데, 이 가운데 40여명 정도가 ‘반나체’ 활동가이고, 나머지는 ‘착의’ 활동가다.
그들의 도발적인 시위 방식은 여성계 안에서도 찬반 의견이 나뉜다. 우크라이나의 여성학 전문가인 테티야나 부레이차크는 “첫 강의 때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물었더니, 제일 처음 나온 대답 중 하나가 페멘이었다”며 확실히 영향력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다는 것 이외에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강화하는 역효과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너무 잦은 반나체 시위로 이제 ‘일반적인 거리시위’ 방법의 하나가 됐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한 페멘 쪽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인나 솁첸코는 “우리는 전통적인 페미니스트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여성단체들은 논문을 쓰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론가가 아닌) 활동가가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실제 페멘의 활동은 영하의 날씨에 반나체를 불사할 정도로 열정적일 뿐만 아니라, 때론 생명의 위협을 받을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인나 솁첸코 등 세 사람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 위해 벨라루스로 갔다. 이들은 정보당국 요원들에게 납치돼 며칠간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체험을 했다. 당시 납치됐던 활동가는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누가 페멘을 초대했는지, 시위 대가로 유럽에서 돈을 받았는지 등을 취조당한 뒤 “마지막 숨을 쉬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전했다. 일행은 결국 두 나라의 외교적 위기까지 초래한 끝에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인 옐스크 지역에서 풀려났다.
“친푸틴 성향” 논란엔 ‘결백’ 호소
이런 ‘열성’에도 불구하고 시위 방식뿐만 아니라, 기금 마련이나 사생활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페멘은 3만여명의 온라인 지지자 등에게서 후원금을 받는 것 이외에 적극적인 수익사업도 벌이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의 보도를 보면, 페멘은 2010년부터 활동가들의 가슴 사진을 팔기 시작했다. 맨가슴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색깔인 파랑, 노랑색을 칠하고 찍은 사진이다. 신입 활동가의 사진은 장당 50달러에, 베테랑 활동가의 사진은 100달러에 판매됐다. 그들의 활동과 외설의 차이가 도대체 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이런 까닭에 활동가의 부모들은 우려가 크다. 금발의 활동가인 알렉산드라 솁첸코는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키예프에 왔다가 페멘에 몸담게 됐다. 어머니 류드밀라 솁첸코는 현지 언론 <키예프 포스트> 인터뷰에서 “시청에서 근무하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사람들이 딸의 행동 때문에 나를 질책한다”며 딸을 키예프로 보낸 걸 후회했다. 또 그는 “딸을 말리고 싶지만, 페멘 지도자들이 내 딸 같은 소녀들을 완전히 세뇌시켰다”고 푸념했다. 한편에서는 활동가들의 부모들이 그들의 약물복용 문제를 우려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들의 ‘정치적 색깔’도 종종 도마에 오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페멘이 여성정치인이자 전 총리인 율리야 티모셴코에 우호적이고 정적인 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에 비판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티모셴코의 소녀들’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푸틴의 에이전트’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페멘 쪽은 “정치·종교와 무관한 독립 조직”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총선 이후 반푸틴 시위가 들끓었을 때는, 모스크바의 한 성당 건물 앞에서 “신이시여, 차르(푸틴의 별명)를 없애주세요”라는 푯말을 들고 ‘결백’을 몸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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