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 즉위 60돌
재위기간 실업자 7배 뛰고
영 대외적 영향력도 내리막
재위기간 실업자 7배 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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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2시(현지시각) 영국 런던 템스강에는 엘리자베스 2세(86) 영국 여왕과 남편 필립공(91)이 탄 왕실 바지선이 떴다. 넉달 전인 2월6일 시작된 여왕 즉위 60돌 기념행사 ‘다이아몬드 주빌리’의 절정이다. 각지에서 모여든 배 1000여척이 시민 수백만명이 보는 가운데 여왕 부부를 호위하며 7마일(약 11.26km)을 이동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나흘간의 임시공휴일 첫날인 2일에도 여왕은 엡섬 더비 경마대회를 참관하며 15만명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확인했다.
21세기에도 지속되는 영국인들의 군주제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의 발표를 보면, 공화제를 원하는 영국인 비율은 1969년 18%, 1993년 18%, 2002년 19%, 2011년 18%로 변화가 없다. 영국인 4분의 3은 군주제를 지지한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마저 “의회 등 다른 기관들에 대해 냉소적인 영국인들이 도대체 왜 군주제에는 충성스러운가” 의문을 표했을 정도다.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1837~1901년)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 왕위에 앉아 있다. 윈스턴 처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까지 엘리자베스 2세를 거친 총리만 12명이다. 그 기간은 영국이 대내외적으로 큰 부침을 겪은 시기와 일치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97만2174명에서 49만8433명으로 줄어든 공무원 수, 37만9000명에서 265만명으로 늘어난 실업자 수는 팍팍해진 영국의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한다. 대외적인 영향력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외 영토의 축소는 물론, 1952년 당시 한국과 케냐, 이집트, 말레이 등을 누볐던 영국군은 현재 아프간에만 파견돼 있다.(그래픽 참조)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추락하는 영국의 위상은 역설적으로 왕실 유지의 버팀목이 됐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대영제국’의 위상은 미국에 내줬다. 1950년대 영국은 미국화되는 세계 정세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가족과 사회를 뒷받침하던 전통 가치들도 무너졌다. 군주제는 너무 빠르고 공포스러운 변화에 대한 보호막, ‘안정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급변 환경 속 ‘안정의 상징’
국가정체성의 한 부분 이뤄
“군주제 비용 비싸” 반발도 여왕의 헌신과 지혜로운 처신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붙잡은 것도 사실이다. 1926년 조지 6세의 장녀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윈저공)가 왕위를 버리고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을 선택하면서 극적으로 여왕의 운명을 떠안게 됐다. 1936년 조지 6세가 왕위를 물려받았고, 1952년 2월6일 부친의 죽음으로 영국의 40번째 군주가 됐다. 대관식은 이듬해 6월2일 치러졌다. 그는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하면서도 2차 대전 당시 아버지를 졸라 여자 국방군에 입대할 정도로 군주의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 1997년 전 며느리 다이애나비의 죽음으로 최대 고비를 맞았지만 몸을 낮추고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영국의 독특한 국가정체성에서 이유를 찾는 시각도 있다. <비비시> 방송은 “영국의 국가정체성은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별난 것, 오래되고 복잡한 것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영국만의 군주제’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국가정체성의 한 부분을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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