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집트 ‘권력 부자세습’ 밀약설
무바라크, 아들 가말 중용…‘측근내각’ 구성
현지언론 “중동문제 미국편 조건 ‘양도’ 인정”
야 대선출마 까다로워…최대야당 아예 봉쇄
24년째 장기집권 중인 호스니 무바라크(77) 이집트 대통령의 권력 부자세습에 대한 미-이집트 정부 간 밀약설이 이집트 내에서 제기됐다.
지난 28일 5번째 대선 출마를 공식발표한 직후 현지 언론에 보도된 의혹의 내용은, 그가 당선 뒤 아들 가말(42)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줄 계획이며 이를 미국이 “반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집트에 매년 20억달러 이상을 지원하고 있어 이집트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집트 주간지 <알 미단>은 28일 고위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지난 12일 이집트를 방문했던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이 무바라크 대통령 등을 만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권을 아들 가말에게 넘기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무바라크 정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중동 현안에서 미국의 입장에 서기로 약속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1981년부터 24년째 집권하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 해도 6년 임기를 다 채우기에는 고령인데다 최근 가말이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부자세습 논란이 계속돼 왔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2002년 금융전문가 출신의 둘째 아들 가말을 국민민주당 서열 3위인 정치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또한 지난해 7월에는 내각을 전면 개편해 나이든 관료들을 해임하고 가말의 측근인 국민민주당 정치위원회 출신의 젊은 관료들을 대거 임명해 “가말 내각”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현지 분석가들은 올 가을 대선에서 당선될 것이 거의 확실한 무바라크가 다음 임기 동안 중도사퇴한 뒤 선거를 통해 가말을 후계자로 앉히려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 들어 이집트의 다양한 야당세력들은 ‘키파야(충분하다) 운동’을 결성해 대규모 거리 시위를 벌이며 ‘무바라크 집권 연장 반대’ ‘무바라크 부자 권력 세습 반대’를 외쳐왔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있으며, 아랍과 서구의 ‘중재자’를 자임해 온 미국의 주요한 동맹이다. 미국 내에서도 무바라크의 장기집권과 야당 탄압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월 “이제는 이집트가 중동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민주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이집트를 방문한 로라 부시 대통령 부인이 “미국도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조속한 정치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등 최근에는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요구 뒤 이집트 의회가 헌법을 바꿔 여러 후보가 출마하는 대선을 치르기로 했지만 출마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 경쟁자가 등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좌파정당인 타감무당과 나세르당 등은 후보를 내지 않고 선거를 보이코트하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사실상의 최대야당인 이슬람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원은 출마가 금지돼 있다. 올해 새로 창립한 알 가드당의 아이만 누르 대표 정도가 출마할 예정이다.
박민희 기자, 카이로/연합뉴스 minggu@hani.co.kr
박민희 기자, 카이로/연합뉴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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