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피난처 찾는 사람 보호”
영 “대사관 진입해 체포” 공문 보내
영국 경찰 체포 별러 출국 못할수도
영 “대사관 진입해 체포” 공문 보내
영국 경찰 체포 별러 출국 못할수도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1)의 에콰도르 망명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가 에콰도르로 가는 길은 매우 멀고도 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카르도 파티뇨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16일 수도 키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산지의 망명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그는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오랜 전통에 따라 어산지의 망명신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어산지가 현재 머물고 있는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에콰도르 본토로 갈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영국 경찰은 에콰도르 대사관을 둘러싸고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나오는 즉시 체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심지어 에콰도르 대사관에 진입해 어산지를 체포할 수도 있다는 ‘협박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비비시>(BBC) 등의 보도를 보면, 파티뇨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협박 공문을 받았다”며 “어산지를 넘겨주지 않으면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을 급습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고 폭로했다. 파티뇨 장관은 “이런 명백한 협박은 외교적이고 문명화된 준법 국가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은 양국간의 외교적 마찰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파티뇨 장관은 “영국 당국이 밝힌 방법들을 실행한다면, 적대적인 행동으로 간주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키토의 영국 대사관 앞에서도 수십명의 시위대가 “우리는 주권국가다,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영국의 위협에 항의하고 있다.
에콰도르는 특히, 영국이 에콰도르 대사관에 진입하는 것은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국은 영사기관에 관한 자국 법률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외국이 영사기관을 임무수행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지 않으면 영국 영토 안에서 대사관 지위를 박탈할 수 있으며, 영국 경찰이 대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에이피>(AP) 통신은 대사관 건물에 강제로 진입하기 위해 이 법률이 적용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영국 경찰이 실제 에콰도르 대사관에 진입할 가능성도 낮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어산지가 영국 땅을 떠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이날 에콰도르의 결정에 대해 “실망스러운 결정”이라며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어산지의 에콰도르 대사관 체류는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스웨덴 정부 또한 이날 에콰도르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어산지는 2010년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합의 아래 이뤄진 성관계라고 혐의를 부인하면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해 12월 런던에서 체포된 어산지는 보석상태에서 스웨덴 송환 중단 소송을 벌였지만, 영국 대법원은 지난 6월 송환 결정 재심 요청을 기각했다. 어산지는 6월19일 보석이 허가된 거주지를 떠나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한 뒤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어산지는 현재 스웨덴으로 보내질 경우 미국으로 재송환돼 간첩 혐의로 기소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2010년 말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미국 외교전문 25만건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에콰도르의 좌파 대통령인 라파엘 코레아도 미국에서 어산지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