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구제기준 ‘징벌적 성향’ 뚜렷
“유럽연합(EU)이 구제금융 지원의 새 기준을 마련했다.”
26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미국 <뉴욕 타임스> 등은 전날 타결된 키프로스 구제금융 협상안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독일과 북유럽 부자 나라들이 앞으로 구제금융이 필요한 국가들에 적용할 징벌적이고 가혹한 기준을 세우는 데 키프로스를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원칙은 ‘채무자의 손실 없는 구제금융은 더 이상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구제금융이 투입되는 부실은행의 주주들이 첫번째로 손실을 봐야 한다. 그 다음은 금융시장을 통해 돈을 빌려준 채권소유자다. 나머지 손실은 예금자들이 메울 것이다”라고 밝혔다. 유럽 어디에도 이제 ‘원금보장’의 성역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유럽 지도자들은 자국 유권자들이 다른 나라의 무책임한 은행과 고객을 구제하는 데 세금을 쏟아붓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과 북유럽 강경파들이 ‘잘못된 경영을 속죄하고 고행에 동참해야 구제 받는다’는 원칙을 못박았다는 지적이다.
유럽 강경파들은 ‘유로존 금융동맹(banking union) 안에 카지노 경제는 없다’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키프로스처럼 비정상적으로 큰 금융산업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면서 전체 유럽의 경제를 취약하게 만드는 위험한 경제모델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연합이 제시한 새 기준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유럽 강경파들처럼 ‘무책임한 경영과 투자를 방지하고, 유럽 납세자의 돈을 구제금융에 덜 쓰겠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반면 새 기준 탓에 유럽의 경제회복이 늦어지고 구제금융 비용도 늘 것이라는 반론도 많다. “예금도 몰수당할 수 있다”는 메시지 탓에, 재정난을 겪고 있는 국가와 은행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이는 결국 구제금융 확산으로 이어지리라는 우려다. 유로존 경제위기 해결에 협력해 온 ‘트로이카’의 갈등이 노출된 점도 시장을 불안케 하는 요소다. 키프로스 협상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은행예금 부담금’을 밀어부친 반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 금융권에 끼칠 부작용을 고려해 반대해왔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25일 “키프로스 협상은 투명성과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했고 소통 과정도 나빴다”고 비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1보] 북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 “1호 전투태세 진입”
■ 낸시 랭 “‘전두환 풍자 그림 재판 촌스러워. 앙”
■ 우리나라 부자들, 어떻게 돈을 벌까?
■ MB맨 수공사장 사표…물갈이 신호탄?
■ ‘남자가 혼자 살 때’ 한·중·일 독거남 비교해보니…
■ [1보] 북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 “1호 전투태세 진입”
■ 낸시 랭 “‘전두환 풍자 그림 재판 촌스러워. 앙”
■ 우리나라 부자들, 어떻게 돈을 벌까?
■ MB맨 수공사장 사표…물갈이 신호탄?
■ ‘남자가 혼자 살 때’ 한·중·일 독거남 비교해보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