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용가 광장에 서서 침묵시위
수백명 따라하며 전국으로 번져
“시위대 창조성·유머 되찾고 있다”
수백명 따라하며 전국으로 번져
“시위대 창조성·유머 되찾고 있다”
지난 주말, 경찰의 진압작전에 밀려난 터키 반정부 시위대가 더욱 강력한 저항의 방식을 발견했다.
새로운 저항은 17일 시작됐다. 그날 저녁, 에르뎀 귄뒤즈(34)는 이스탄불 탁심광장으로 혼자 걸어갔다. 3주 동안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의 진앙지 구실을 한 광장은 조용했다. 최루가스 분사기를 허리춤에 매달고 광장을 포위한 경찰은 행인의 통과만 허용했다. 시위를 하려는 낌새만 보여도 체포했다.
귄뒤즈는 광장 한복판에 이르러 몇개의 생수통과 검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감색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우두커니 섰다.
광장 맞은편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문화관이 있다. 대형 터키 국기 2개와 함께 아타튀르크의 대형 초상화가 건물 벽에 내걸렸다.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행위예술가인 귄뒤즈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경찰이 다가와 그의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고는 그냥 돌아갔다. 체포할 명분이 없었다.
행인들이 하나둘 주변에 모였다. 귄뒤즈의 곁에 서서, 이슬람주의를 배제하고 세속주의 정치의 기초를 마련한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 인원이 300여명에 이른 새벽 2시께, 경찰은 “이동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르지 않은 10여명이 연행됐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후 귄뒤즈를 따라하는 침묵시위가 “터키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고 <에이피>(AP)·<로이터> 등 외신이 18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스탄불 시민들은 말없이 서 있는 귄뒤즈의 사진을 트위터·페이스북 등에 올렸다. 귄뒤즈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터키인들은 ‘서 있는 남자’라는 뜻의 ‘두란 아담’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애초 귄뒤즈는 매일 3시간만 쉬며 한달 동안 탁심광장에서 침묵시위를 벌일 계획이었다. 휴식 시간엔 친구들을 대신 세울 생각이었다. “그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시위 시작과 동시에 그와 함께하는 친구들이 등장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18일 저녁, 탁심광장에는 다시 나타난 귄뒤즈와 함께 더 많은 시민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침묵시위’에 동참했다. 비슷한 시각, 수도 앙카라의 크즐라이광장에는 ‘서 있는 여자’가 등장했다.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어느 시민이 숨진 자리다.
그밖에도 터키 여러 도시에 ‘서 있는 남자’ 또는 ‘서 있는 여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자신의 침묵시위 사진을 트위터·페이스북에 속속 올렸다. 귄뒤즈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서 있는 경우가 많지만, 누군가는 터키 국기를 들고, 누군가는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지고, 침묵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경찰의 진압작전 이후 웃음을 잃은 터키 시위대가 귄뒤즈의 등장 이후 창조성과 유머를 되찾고 있다”고 평가한 <월스트리트 저널>은 탁심광장을 지나던 어느 중년 여성의 말도 전했다.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거나 공격할 수 없어요. 터키 국기와 아타튀르크 사진을 보고 있는 사람을 무슨 명분으로 체포할 겁니까?”
지난 17일 ‘성공적인 시위 진압’을 선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경찰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는데, 폭력을 쓴 것은 테러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폭도들”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대 가운데 4명이 숨지고 7500여명이 다쳤다고 터키의학협회가 이날 발표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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