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대사관 도청했다는데…정부는 ‘침묵’

스노든 추가폭로, 유럽 등 38개국 전방위 표적
EU ‘FTA 협상 중단’ 경고…청와대 “답변 부적절”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유럽·아시아·중동 등 38개국의 재미 공관을 전방위로 도청한 사실이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추가로 폭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당장 미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교착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고, 독일 연방 검찰은 미국 정보기관을 상대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등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무런 공식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월30일(현지시각) 스노든이 폭로한 2010년 9월치 미국 국가안보국(NSA) 문서를 근거로, “미 국가안보국은 38개국 대사관과 대표부를 (도청) ‘표적’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며 “전통적 이념 적성국과 중동 국가들 외에도 유럽연합, 프랑스, 그리스는 물론 일본, 멕시코, 한국, 인도, 터키 같은 많은 동맹국들도 표적으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번 사찰 활동에 도청, 컴퓨터 해킹, 전파 수집 등 온갖 수법이 동원됐으며, 미국 국가안보국뿐 아니라 연방수사국(FBI)이나 중앙정보국(CIA)이 함께 개입했을 개연성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유럽연합 대사관·대표부를 도청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나온 이번 추가 폭로는 각국 여론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 유럽 나라들은 당장 미국 정부에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한편 관련자 기소 등 법적 대응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미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핵심 창구인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미국 정부에 사실 조사를 공개 요구했다. 비비안 레딩 유럽연합 법무집행위원은 “우리 파트너들이 유럽 협상가들의 사무실을 도청했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다면, 우리는 대서양 양안 간의 시장 확대에 대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독일 주간 <슈피겔>이 독일에서 하루 최대 6000만건의 전화·온라인 정보가 미국에 의해 수집됐다고 보도한 것 등과 관련해 독일 연방 검찰은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을 상대로 기소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1일 오후까지 어떤 공식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답변하기는 적절하지 않다”며 “대사관이나 외교부 쪽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겠다’는 말 이상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고,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보도는 아직 확인된 것이 아닌 만큼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정세라 기자, 워싱턴/박현 특파원 [e-mail]

<한겨레 인기기사>

■ 영국도 아이 장래는 할아버지의 재력이 좌지우지
■ 미국이 워싱턴 한국대사관 도청했다는데…우리 정부는 ‘침묵’
■ 정준양·이석채·조석래·현정은, 국빈 만찬 왜 빠졌지?
■ 갈수록 짧아지는 ‘하의실종’ 교복, 남자 교사들은 천장만…
■ [화보] “대통령 물러나라” 이집트 사상 최대 반정부 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