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서 반박 일관…프랑스·독일 등 EU 반발 커져
WP 등 미국 언론도 “대사관 도청 국제조약 위반” 비판
WP 등 미국 언론도 “대사관 도청 국제조약 위반” 비판
한국·유럽 등 38개국 재미 공관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전방위 도청 행위가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행위인데도 미국 정부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다른 나라들도 모두 하는 행위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탄자니아 방문 중에 연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도청 행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우리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국가들, 정보기관을 가진 모든 나라에서 정보기관들은 세상 일을 더 잘 파악하고, 각국 수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기관들은 공개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추가적인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며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정보기관이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보기관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를 하겠다고 전제를 하긴 했으나,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자국에 있는 외국 공관들에 대한 도청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특히 그는 “유럽 국가의 수도에서도, 내가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가 아니라면 최소한 내가 유럽 지도자들과 얘기할 때 발언 요지가 무엇일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도 이날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포럼(ARF)이 진행되고 있는 브루나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모든 나라는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한 모든 유형의 활동을 한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패트릭 벤트렐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도 정례브리핑에서 “다른 모든 나라들이 하는 것처럼 미국도 외국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한 채, “관련국들과 직접 얘기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재미 외교공관과 유엔본부 내 유럽연합(EU) 사무실에 대한 도청 행위는 미국도 합의한 국제조약을 엄연히 위반한 것이다. 외교공관과 외교관에 관한 국제 규범인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은 제22조에서 ‘외교공관은 불가침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유엔이 본부 주재국인 미국·오스트리아와 맺은 ‘유엔본부협약’은 제9조에서 ‘유엔본부는 불가침 지역’이라고 명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외국의 재미 공관 및 유럽연합의 유엔본부 사무실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은 미국 국내법상으로는 특별감시법정이나 법무부의 허락을 얻으면 합법이지만 국제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전문가들의 말을 따서 “유엔본부협정과 비엔나협약은 전자감시에도 적용된다”고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제네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엔 회원국들은 정보를 포함한 외교 활동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미국에 일침을 가했다.
유럽 국가들의 반발은 프랑스·독일을 중심으로 점점 거세지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파트너 국가들과 동맹국들 사이에서 이런 유형의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런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변인은 메르켈 총리가 이번 사건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며, 조만간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관해 얘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 파악을 위해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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