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와 관계 틀어지면
중동정책 근간 흔들릴까 우려
“조속히 민정 이양해야” 촉구
중동정책 근간 흔들릴까 우려
“조속히 민정 이양해야” 촉구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집트 군부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 사태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등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무르시 대통령 축출이 벌어지기 전 며칠 동안 외교·군사 채널을 통해 무르시 대통령과 이집트 군부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나 모두 무위에 그쳤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일(현지시각) 무함마드 카밀 아므르 이집트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무르시 대통령이 새 대통령 선거와 실질적인 연합정부 구성, 새 총리 임명 등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으나 설득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압둘파타흐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에게 쿠데타를 벌이지 말 것을 촉구했다”며 “그러나 시시 장관은 자신은 개입을 원치 않으나 질서를 빨리 회복시킬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전 개입에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제 이집트 군부가 조속히 민선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게 하는 것으로 목표를 낮췄다. 이를 위해 미국은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 체결 이후 이집트에 제공하고 있는 연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의 대규모 군사·경제 원조를 지렛대로 삼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외원조 가운데 이스라엘 원조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것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이집트에는 매우 긴요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3일 성명에서 “관련 부처에 이집트에 대한 원조 제공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 법령은 선출직 지도자가 쿠데타로 추방된 나라에는 원조를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원조 중단 여부를 놓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이번 사태는 명백한 쿠데타”라며 “법이 규정한 대로 당장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브루킹스연구소의 마틴 인딕 외교정책프로그램 소장은 “원조 중단은 이집트의 실세인 군부를 적으로 돌리는 것으로 매우 비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이 미국 중동정책의 근간을 이루는데다 이집트가 중동 내에서 차지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오바마 행정부가 원조 중단을 단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이집트 정부는 미국 내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사태는 쿠데타가 아니라며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아므르 외무장관은 4일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태는 전혀 쿠데타가 아니다”라며 “이집트는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이기에 이집트의 안녕은 미국에도 중요하다. 미국이 상황을 올바르게 읽기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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