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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오사마 빈라덴의 마지막 삶, 뜰에서도 카우보이…

등록 2013-07-09 20:18수정 2013-07-10 08:52

‘알자지라’ 파키스탄 보고서 입수
뜰에서도 카우보이 모자로 가려
담장밖 나무도 경계
심장·신장병 진료 없이 자가치료
여름옷 세벌·겨울옷 세벌로 버텨
2002년 봄 또는 여름부터 2011년 5월2일 0시50분 ‘최후의 순간’까지, 오사마 빈라덴(사진)은 파키스탄에 몸을 숨겼다. 세명의 아내, 자녀와 손주들, 연락책 두명의 일가도 함께였다. 그 대식구가 어떻게 9년이나 세계의 ‘빅 브러더’ 미국과 파키스탄 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을까. 파키스탄 의회의 요구로 구성된 독립조사기구인 ‘아보타바드 위원회’는 2011년 9월부터 빈라덴의 아내들과 파키스탄 당국자 등 200여명을 조사해 336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를 감췄으나, 8일 아랍 뉴스채널 <알자지라>에 의해 봉인이 풀렸다.

빈라덴은 2001년 12월 아프가니스탄 토라보라 전투에서 체포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파키스탄으로 건너와 서와지리스탄, 바자우르, 페샤와르, 스와트, 하리푸르에서 각각 수개월~2년씩 머물렀다. 최후의 거점이던 북서부 아보타바드 요새엔 2005년 8월 정착했다. 미국 해군특전단 네이비실이 급습할 때까지, 이곳에서 고행 같은 은둔 생활을 했다.

‘보안’에 대한 빈라덴의 주의는 각별했다. 그는 요새 내부의 뜰을 거닐 때도 카우보이모자를 썼다. 머리 위에서 탐지당하는 것을 우려해서다. 요새 밖에 있는 포플러나무도 경계했다. 그는 누군가 나무에 숨어 요새를 관찰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빈라덴은 심장과 신장 지병을 앓았지만 의사의 진료 대신 아랍 전통 약제로 자가치료를 했다. 몸이 무거울 땐 초콜릿과 사과로 기력을 회복했다.

빈라덴의 가족들은 요새에 함께 사는 연락책의 가족들과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연락책이던 이브라힘 쿠와이티와 아브라르 쿠와이티가 외부를 드나들며 식료품 등을 공급했다. 이브라힘은 배관이나 집기 수리에도 능해 외부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었다. 빈라덴은 자녀와 손주 교육도 직접 했다. 빈라덴 일가는 극도로 검소하고 절제된 종교적 삶을 살았다. 빈라덴은 요새에 들어올 때 여름옷 세벌과 겨울옷 세벌을 들고 왔다. 아내들은 “빈라덴은 소유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보호 장비도 많지 않았는데, 빈라덴이 알라의 보호를 믿었기 때문이다. 딸이나 손녀들은 3살 때부터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지켰다. 여성들은 텔레비전 화면에 남자가 나오기만 해도 몸을 숨겼다. 빈라덴은 석사 학위를 소지한 아내들과도 정치 문제에 대해 일절 말을 섞지 않았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왼쪽)이 미군에 사살된 뒤, 피로 얼룩진 그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가 공개됐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왼쪽)이 미군에 사살된 뒤, 피로 얼룩진 그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가 공개됐다.

이 은밀한 생활은 2011일 5월2일 새벽 막을 내렸다. 5월1일, 빈라덴은 나이가 가장 적은 아내인 아말 아흐마드 사다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을 조금 넘긴 무렵 밖에서 “폭풍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어 미군 한명이 빈라덴을 겨냥하는 것이 보였다. 아말은 그를 저지하다 무릎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이후 빈라덴의 딸인 수마야는 아버지가 즉사했음을 알았다. 총알이 빈라덴의 이마에 꽂혔고,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미국은 빈라덴 최후의 순간을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만든 배후로 파키스탄을 의심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파키스탄 정부와 알카에다의 유착 의혹을 조사한 뒤 “비난을 면할 수 없을 정도의 무능과 나태로 인한 파키스탄 정부의 총체적인 실패”로 결론 내렸다.

파키스탄 군과 정보 당국은 2005년 사실상 빈라덴 추적을 포기했다. 심지어 경찰은 2002년께 빈라덴 일행을 과속으로 단속하고도 깨끗하게 면도한 빈라덴을 알아보지 못했다. 보고서는 파키스탄 정부의 승인 없이 이뤄진 미국의 작전 수행을 “미국 대통령이 명령한 범죄적 살인 행위”이자 “파키스탄에 대한 모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국이 세시간 가까이 자국 영토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까맣게 몰랐던 정부의 무능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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