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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흑인 소년 살해 ‘백인 히스패닉’에 무죄…들끓는 미국

등록 2013-07-14 20:19수정 2013-07-15 08:36

* 백인 히스패닉 :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페루계

플로리다 자경단 지머먼 1심 무죄
후드티 차림 비무장 소년에 총격
“몸싸움중 생명위협” 정당방위 인정
곳곳 항의시위…인종갈등 격화 우려

미국 ‘흑인 후드티 소년 살인사건’의 피고 조지 지머먼(29)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단은 무장한 자경단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소년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것을 만장일치로 ‘정당방위’라고 인정했다. 미국 형사사건에서 배심원단의 무죄평결은 최종적인 것으로, 검찰은 항소할 수 없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적 수사 관행과 총기법 논란을 촉발한 피고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흑인 사회가 또 한번 격렬하게 들고일어났다.

플로리다주 세미놀카운티 순회재판소 배심원단은 13일 2급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지 지머먼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사건을 담당한 데브라 넬슨 판사도 평결 직후 지머먼에게 “법정을 나가는 순간 위치추적 장치가 꺼질 것”이라며 무죄 판결을 확인했다.

사건은 2012년 2월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샌퍼드 주택가의 자경단장이었던 지머먼은 이날 저녁 7시11분께 모자가 달린 티셔츠를 입고 홀로 비 내리는 밤길을 걷던 트레이번 마틴(17)을 발견했다. 그는 911에 전화를 걸어 “의심스런 남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 배치 담당자는 마틴을 쫓지 말라고 지시했으나, 지머먼은 차에서 내려 뒤를 밟았다. 전화통화 중이었던 마틴은 친구 레이철 진텔(19)에게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어 어느 쪽에서 시작했는지 불분명한 몸싸움이 일어났고, 지머먼은 마틴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후 지머먼은 마틴이 먼저 자신을 공격했으며, 머리를 인도에 내리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지머먼을 체포하지 않았다.

‘지머먼 사건’은 즉시 흑인과 지식인 사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숨질 당시 마틴이 비무장 상태였으며, 몸에 지니고 있던 거라곤 편의점에서 갓 구입한 스키틀스 사탕과 과일주스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틴은 전과도 없었던 모범생으로, 단지 후드티를 입은 흑인 소년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로 의심받았다. 미 수사당국의 ‘인종 프로파일링’으로 차별받아온 흑인 사회의 분노에 불을 댕긴 꼴이었다. 지머먼은 백인 아버지와 페루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백인 히스패닉’이어서, 미국의 인종구성 변화로 심각해지고 있는 ‘흑인-히스패닉’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후드티를 입은 시위대가 들고일어나면서 흑인 인권운동의 부활 조짐도 나타났다. 경찰은 결국 사건 44일 뒤 지머먼을 체포했다.

검찰은 ‘경찰이 되고 싶은’ 지머먼이 무리하게 마틴을 범죄자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시작부터 검찰에 난관이었다고 지적했다. 분노는 있으나,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주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에 따르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 도망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지머먼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과 악의를 가지고 마틴을 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증거는 지머먼의 편이었다. 사건 직후 사진 속에서 지머먼의 코와 뒤통수에서는 선명한 상처와 핏자국이 드러난다. 이 사진은 마틴이 지머먼을 공격했으며, 지머먼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증거가 됐다.

이번 사건은 유선방송과 온라인 매체들이 재판의 전 과정을 생중계하고, 수백만명이 시청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평결 직후 지머먼 변호인 돈 웨스트는 “기소 자체가 검찰의 불명예”라며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흑인 사회는 백인과 히스패닉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의 평결에 불신을 드러냈다. 법원 밖에서는 100여명의 시위대가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워싱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전국에서도 밤새 항의 행진이 이어졌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시위대가 거리에서 불을 지르고 경찰차를 공격하는 등 폭력 시위 양상도 나타났다. 특히 전미유색인종발전협회(NAACP)는 “법무부를 상대로 지머먼이 마틴의 인권을 침해했는지 조사하도록 청원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시위 국면이 계속될 것을 예고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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