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관련 각종 의학논문 검토
“커피는 하루 두잔만 드세요.”“일주일에 와인 한두잔은 아마 괜찮을 거예요.”
미국의 경제학자 에밀리 오스터는 커피와 와인을 즐긴다. 그리고 3년 전 임신했을 때,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을 듣고 ‘왜?’인지 궁금해졌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었지만, 근거없는 고행은 싫었다. 그는 임신기간 중 하루에 커피 한잔, 두잔, 세잔은 각각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싶었다. 소량의 와인은 ‘아마도’ 괜찮을 거라는 답변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통계와 증거를 찾아내 스스로 커피와 알코올 섭취에 관한 중대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에 수백건의 논문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을 에세이 형식으로 게재했다.
오스터의 조사 결과, 임신부의 음주와 태아의 알코올 증후군에 대한 최고의 연구는 2010년 영국 산부인과저널에 실린 것이었다. 임신기간 음주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임신부 3000명을 조사했고, 이들의 자녀를 14년간 추적했다. 임신부는 금주, 일주일에 한잔, 일주일에 2∼6잔, 일주일에 7∼10잔 등 4그룹으로 나뉘었다. 그리곤 임신 18주 때 음주 수준에 따라, 아이들이 2살이 됐을 때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금주의 경우 11%의 자녀들이 행동상의 문제를 보였다. 한잔은 9%, 2∼6잔은 11%, 7∼10잔은 14%의 자녀가 비슷한 문제 행동을 보였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더 컸을 경우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자녀의 아이큐도 비슷했다. 역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5000명의 임신부와 자녀를 조사한 결과, 임신 초기에 가끔 술을 마신 여성들의 자녀는 금주한 여성들의 자녀보다 14살이 됐을 때 평균적으로 아이큐가 3점 정도 높게 나왔다. 물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벼운 음주를 한 임신부의 자녀가 금주한 임신부의 자녀보다 못하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1년 발표된 한 논문은 ‘가벼운 음주’도 아이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활용된다. 임신 기간에 술을 마신 여성들을 인터뷰했고, 하루 한잔의 술도 자녀들의 문제 행동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오스터는 이 연구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 조사대상 가운데, 금주한 여성 18%와 하루 한잔씩 술을 마신 여성 45%가 임신 기간 중에 코카인을 복용한 것이다. 오스터는 “아마도 문제는 코카인이지 가끔 마시는 샤도네이 한잔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것과 음식과 함께 먹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사교클럽 남학생들처럼 마시지 말고 유럽 성인들처럼 마시면 된다”고 조언했다.
사실 오스터에게 술보다 더 중차대한 이슈는 커피였다. 그는 “나는 커피를 사랑한다. 임신 기간에 커피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 심장에 공포를 불러일으켰다”고 고백했다. 그는 커피와 유산의 상관관계를 파헤쳤고, 그 ‘인과관계’에도 큰 결함이 있다는 걸 찾아냈다.
그는 “나이든 여성이 커피를 더 마시는 경향이 있고, 연령은 유산과 관련이 있다”며 커피가 문제가 아니라 고령 임신이 문제라는 견해를 조심스레 피력했다. 입덧과 유산, 그리고 커피의 관계도 지적했다. 임신 초기에 입덧을 경험한 여성들은 유산 확률이 낮다. 입덧이 ‘건강한 임신’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입덧이 심할 경우 커피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입덧이 없는 여성은 임신 전과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 유산 원인은 입덧이 없는 ‘건강하지 않은 임신’일 가능성이 높은데, 커피를 마셔서 유산했다고 결론내리면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오스터가 ‘모든 신뢰할 만한’논문들을 검토한 결과, 하루 두잔 넘게 커피를 마시는 여성이 유산할 확률은 24%였다. 두잔 이하로 마실 경우 유산 확률은 13%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종적인 커피 섭취량과 무관하게 임신 중에 커피를 줄이기만 해도, 유산 확률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임신 전보다 커피를 덜 마시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커피는 하루 서너잔 마시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곤 “내 두살배기 딸 페넬로페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밝힐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로 에세이의 끝을 맺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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