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년 동안 전쟁의 공포로 마음속 깊이 상처 입은 이라크 어린이, 내전의 한 가운데서 굶주리고 있는 수단의 아이, 아시아의 해일피해로 부모를 잃은 고아 등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온 캐럴 벨라미(63)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총재가 오는 4월 말 퇴임한다.
벨라미 총재는 23일 〈에이피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목격했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행동에 나서야만 한다”는 게 지난 10년 동안 어려움을 헤치고 유니셰프를 이끌어온 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도 충분히 하고 있는가,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란 질문을 항상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회고했다.
벨라미 총재는 유니세프가 현재 집중하는 사업은 질병예방, 학교 다시 세우기 등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며, 유니세프가 어린이들의 건강 문제보다 권리 문제만 너무 강조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어린이들의 권리와 건강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니세프는 이제 지진해일 재앙과 같은 긴급상황에도 재빨리 대처할 수 있게 되는 등 사업수행 능력이 크게 확충됐다며, 어린이 에이즈 감염, 아동 폭력·착취에 맞서는 노력을 강화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벨라미 총재는 뉴욕주 상원의원과 비어스턴스사 대표, 유엔평화봉사단장 등을 거쳐 1995년 유니세프 총재가 됐다. 78년 첫 여성 뉴욕시의회 의장이 됐고 85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을 때도“나는 그저 다음 일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며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주 벨라미 총재의 퇴임이 발표되자 성명을 내고 “벨라미 총재는 가장 연약한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강하고 효율적인 목소리를 내왔고 빈곤과 질병, 학대, 차별과의 싸움을 이끌어 왔다”고 찬사를 보냈다.
독신으로 자녀를 두지 않은 벨라미 총재는 퇴임 뒤 미 버몬트주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인 ‘세계 교육(World Learning)’의 대표로 부임할 예정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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