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의회, 시리아 무력제재안 부결
미 정부, 단독공격 가능성 시사에도
의회에선 근거·명분 회의론 커져
프, 영국 무관하게 제재 동참 뜻
교황은 “대화로 유혈충돌 막아야”
미 정부, 단독공격 가능성 시사에도
의회에선 근거·명분 회의론 커져
프, 영국 무관하게 제재 동참 뜻
교황은 “대화로 유혈충돌 막아야”
영국 의회가 시리아 무력제재안을 부결하자, 영국 정부가 군사행동 불참을 선언했다. 예기치 못한 암초에 부닥친 미국은 ‘단독 공격’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유엔 화학무기 조사단이 31일(현지시각) 시리아를 떠난 뒤에 공격이 개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유엔 승인이 어려운 시리아 공습에 최대 우군인 영국마저 불참해 미국은 국제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3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 하원이 29일 밤늦게 정부의 시리아 무력제재안을 부결했다”며 “캐머런 총리가 부결 직후 의회의 뜻을 따라 군사행동 불참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캐머런 총리는 29일 ‘원칙적으론 군사개입을 승인하지만, 실제 군사개입 명령은 유엔 조사 발표가 나온 뒤 2차 표결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제재안을 1차 표결에 부쳤다. 애초 29일 하원 표결로 군사개입을 결정하려 했으나, 야당인 노동당은 물론 집권 보수당 안에서도 회의론과 반대론이 큰 것으로 감지되자 9월3일에 최종 표결을 하는 쪽으로 뒤늦게 한발 물러난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후퇴안조차도 272 대 285, 13표 차이로 부결됐다. 집권 보수당 의원 30명과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 의원 9명이 반대표를 던진 게 결정적이었다. <가디언>은 “과거 정치 지도자들은 영국이 세계 이슈에 관여해야 한다는 개입주의 정책을 당연시했지만 영국은 이제 제국주의적이라기보다는 유럽적인 국가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변심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영국 하원이 무력제재안을 부결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국가안보회의(NSC)가 소집되는 등 대처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단독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 하원의 제재안 부결 직후 미 백악관은 성명을 내어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결정은 “미국의 이해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부대변인도 이날 표결 전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단독으로 공격을 개시할 수 있냐’는 질문에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안보 이해를 보호할 의무를 갖고 당선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공조 없이도 시리아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필립 해먼드 영국 국방장관도 <비비시>(BBC)에 나와 “그들은 영국의 불참에 실망하겠지만 영국의 불참이 (미국 등의) 군사행동을 멈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도 영국과 상관없이 시리아 군사제재에 동참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30일 <르몽드> 인터뷰에서 “영국 의회에서 시리아 군사개입이 부결됐다고 해서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단호한 조처를 취한다는 프랑스의 입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프랑스 의회는 새달 4일 시리아 문제를 논의한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은 그 전에 공격이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의회 동의 없이도 시리아 군사제재에 동참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조사단은 애초 일정을 하루 앞당겨 31일 화학무기 피해 현장 조사를 마치고 시리아를 떠날 예정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조사단이 현장 철수 즉시 보고를 할 것이고, 신속하게 임시보고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며칠 안에 공습을 단행할 수 있다는 미국의 위협적 움직임으로 유엔이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가디언>이 지적했다.
하지만 맹방인 영국의 지지마저 잃은 오바마 행정부의 고심은 의외로 깊어질 수 있다.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은 “군사개입 근거와 명분을 정확히 제시하라”며 14개 항목의 질의사항을 백악관에 보냈다. 미국 의회 안에서도 공격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대화만이 유혈충돌 사태를 막을 유일한 방안”이라는 성명을 내는 등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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