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52) 신부
필리핀 인권운동가 유진 신부
성폭력피해아동 자립 등 도와
한국서도 ‘이주노동자 대부’ 활동
성폭력피해아동 자립 등 도와
한국서도 ‘이주노동자 대부’ 활동
“아이들의 밝은 미소 뒤에는 슬픈 일들이 많아요. (성폭력을 피해서) 처음 왔을 땐 무서워하는 표정이 역력해요.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유진(52·사진) 신부는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한국여성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찾은 필리핀 보홀섬의 ‘보홀 위기개입센터’ 앞마당에 25명의 10대 여자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나는 내 꿈을 들려주려고 소리치고 있어”라며 가수 비욘세의 노래 ‘리슨’을 외치듯 불러주었다.
센터는 성폭력, 가정폭력, 인신매매, 아동 성매매 등 젠더(성별)에 기반한 폭력과 학대를 당한 여자아이들의 쉼터다. 노래, 바느질, 요리 등을 배우면서 자립을 준비하고 소수지만 대학에도 간다. 힘든 법정 진술을 이어가며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자살을 시도하고, 자해하기도 한다. 유진 신부는 심각한 아동 성폭력 피해를 입은 제3세계 여자아이들을 도우려고 탐색중이던 한국여성재단에 이 센터를 소개해 올해 초 500만원의 ‘고사리손 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장 실무를 도맡았다.
“아이들은 가해자로부터 학교에 가지 말라는 협박을 받곤 해요. 협박 때문에 일부 아이들은 개인교사를 불러 따로 공부합니다.”
‘말씀의 선교수도회’ 소속인 유진 신부는 사제이자 인권운동가다. 1961년 보홀에서 태어난 그는 자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교단의 뜻에 따라 한국을 찾았다. 1989년부터 경기도 안산 지역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로 20년 동안 인권운동을 했다. 1998년 공로를 인정받아 필리핀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8년 영구 귀국 뒤에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 요즘엔 연간 2000명의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마닐라와 세부를 오가며 결혼 사전 교육을 한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전에 먼저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하는 사랑 없는 결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방주사를 놔주는 것도 제 몫이죠.”
2007년엔 귀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에서 재기할 수 있게 돕는 ‘교육과 개발을 위한 갈릴레아 센터’를 열었다. 유진 신부는 “예수님이 병든 자, 가난한 자와 함께한 곳이 갈릴리 언덕”이라며 “한국인들과 이주노동자들의 기금을 모아 협동조합 형태의 센터를 열게 됐다”고 했다. 그밖에도 필리핀 노숙 어린이들에게 끼니를 제공한 뒤 교육을 시키고, 억지로 성산업에 발목 잡힌 성매매 여성들을 구출하는 등 인권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가고 있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항의하며 뿌리 깊은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는 가톨릭계의 정의구현 운동에도 참여한다. “권력과 편안함을 누리는 게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사제의 길”이라며 그는 웃었다.
“세계의 많은 가난한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고,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교육만이 희망입니다. 교육이 없으면 미래도 없으니까요.”
보홀(필리핀)/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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