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폴리 호텔에 머물다 납치돼
반군 혁명작전실 “부패혐의 체포”
내무·국방부와 손잡고 정권 욕심
카다피 이후 군벌 활개 혼란 극심
반군 혁명작전실 “부패혐의 체포”
내무·국방부와 손잡고 정권 욕심
카다피 이후 군벌 활개 혼란 극심
알리 자이단 리비아 총리가 10일 수도 트리폴리의 한 호텔에서 무장괴한들한테 납치됐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처음엔 이 보도를 부인한 총리실도 이후 성명을 내어 총리의 피랍 사실을 확인했다.
자이단 총리가 머문 코린시아 호텔 직원들은 이날 새벽 총기를 소지한 이들이 자이단을 호텔 밖으로 데리고 나가 대기하던 차에 태웠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괴한들은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으며 자이단을 호송하는 동안 총소리가 나거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알아라비야> 방송은 자이단 총리로 추정되는 남자가 깃을 채우지 않은 회색 셔츠를 입고 얼굴을 찡그린 채 민간인 복장을 한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정지 화면을 내보냈다.
<시엔엔>(CNN)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맞선 반군 집단의 일파인 ‘혁명작전조정실’(OCR)이 페이스북을 통해 재정·행정상의 부패·독직 혐의로 자이단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리비아 형법에 따라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살라 마르가니 법무장관은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은 발부되지 않았으며 이는 틀림없는 ‘납치 행위’라고 비판했다. 혁명작전조정실은 정권 장악을 노려온 반군그룹으로, 리비아 정부의 내무부·국방부와 공조하고 있다. 최근 극심한 정치적 불안이 계속돼온 리비아에선 특정 부처가 특정 반군그룹과 손을 잡는 게 그리 이례적인 일은 아니라고 <시엔엔>이 짚었다. 각 부처는 경호병력을 제공받는 등 필요에 따라 특정 반군조직을 선택하고 있다.
자이단 총리의 납치는 리비아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 4월에도 반군그룹이 법무부와 외무부 청사를 포위하고 장관들의 사임을 압박했다. 리비아는 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시민군의 봉기로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를 끝냈지만, 이후 이슬람주의 무장그룹과 군벌들이 활개치는 무법천지가 됐다. 카다피 몰락 이후 군부에서 쏟아져나온 수많은 무기들은 군벌들의 경쟁을 부추겼고, 리비아 동부 군벌들은 중앙정부로부터의 자치를 주장하며 리비아 경제의 버팀목인 석유 생산을 통제해왔다. 이런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네트워크가 리비아에 거점을 마련하고 조직을 불렸다. 미 정부가 지난 5일 특수부대 네이비실을 투입해 체포한 알카에다 핵심 요원 아나스 리비도 2011년께 리비아에 돌아와 활동했다.
1980년 망명 뒤 스위스 제네바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친서방’ 성향의 자이단 총리는 그동안 이런 난국을 타개하겠다며 서방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는 8일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리비아가 아프리카·중동 전역으로 무기를 수출하는 전진기지로 악용되고 있다”며 “리비아의 교전 상태를 끝낼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서방 국가들에 호소했다. 지난달 영국을 방문해서도 “시리아로의 무기 밀매가 증가하고 있다. 리비아에서 무기를 제거하는 데 영국 정부가 나서서 도와달라”고 말했다.
카다피 축출을 위해 공습작전에 나섰던 나토 국가들은 자이단 총리의 석방을 요구하며 사건 해결을 위한 공조를 다짐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우리는 이런 위중한 시기에 리비아 정부와 국민들을 절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자이단 총리를 즉각 풀어주라고 촉구했다. 미국 국무부도 “사건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과 리비아 고위 관리들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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