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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구호품 속속 쌓이는데…“운반할 트럭이 없다”

등록 2013-11-14 21:02수정 2013-11-15 08:34

14일 오후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시 세인트폴병원의 로비에 마련된 간이병상에서 태풍 하이옌이 휩쓸 때 부상을 입은 서너살배기 아이가 간호사 품에 안겨 울고 있다.   타클로반/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4일 오후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시 세인트폴병원의 로비에 마련된 간이병상에서 태풍 하이옌이 휩쓸 때 부상을 입은 서너살배기 아이가 간호사 품에 안겨 울고 있다. 타클로반/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필리핀 태풍 피해 현장 르포 정세라·김정효 기자 4신
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한 지 일주일이 다가오자, 가장 참혹한 피해를 당한 타클로반의 공항에 각국 정부와 인도주의 구호단체들이 보낸 구호물자와 구조인력이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이재민은 여전히 생필품을 전달받지 못한 채 굶주리고 있다. 물자를 나눠주는 데 필요한 차량·연료·치안이 부재한 삼중고가 지원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의 행정력이 작동하지 않아서다. 당국을 믿지 못하는 생존자들은 친지들의 도움에 의지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공무원마저 “배급 못받아”
상황 나아질 기미 안보여
약탈식품 파는 좌판 등장

외교부, 한국인 19명 소재파악 나서

14일 타클로반 공항에서 세부행 비행기표를 사려는 긴 행렬에 서 있던 다이앤 앙굴로(29)는 “여기 공항에서 6㎞ 떨어진 곳에 부모와 형제들, 삼촌 가족 등 친척 20여명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 줄 식품을 가지고 12일에 들어왔다가 다시 먹을 것과 약품을 구하러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곤 “우리 가족들은 배급을 전혀 받지 못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고 싶지만 공항까지 나올 차도 없고 그 많은 식구들의 표를 구할 수도 없어, 탈출은 포기하고 내가 밖에서 식량과 약을 조달하기로 했다.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굶고 있을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세부시의 공무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외지에 실낱같은 연고라도 있으면 군용기든 민간항공기든 타고 탈출하려고 공항으로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그런 연고마저 없거나 어린아이들이 많아 움직이기 힘든 가족들은 탈출을 포기하고 버티기에 나섰다.

구호물자가 답지하는데, 배급 시스템은 비효율의 극치다. 식량을 운반할 트럭이 부족하고, 있더라도 연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멀쩡한 트럭들이 차고지에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13일 타클로반을 찾은 밸러리 에이머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국장이 타클로반시의 알프레드 로무알데스 시장에게 “연료가 있어야만 물자를 나눠줄 수 있으니, 주유소들이 문을 열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주유소에는 석유가 있지만, 주인들은 도둑을 맞을까봐 문을 열지 않거나, 이곳을 탈출해버렸다.

치안을 유지하고 구호물자 지원에 나설 정부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로무알데스 시장은 13일 시민들에게 시를 떠나 외지의 친척집으로 대피하도록 권고했다. 중앙정부는 구호작업을 총괄하겠다며, 국방장관과 사회복지장관 등을 타클로반에 보내 상황본부를 꾸렸지만 치안이나 식량 사정이 나아지는 조짐은 없다.

22만명 인구의 타클로반시 정부에서는 원래 800명의 정규직 직원과 1200여명의 임시직원이 일했는데, 태풍 뒤 지금까지 복귀한 직원은 극소수다.

시 청사 앞에서 복귀 직원 등록 데스크를 맡고 있는 마일스 라골(60)은 “우리 집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래도 집이 시청에서 가깝고 가족들은 무사해서 어떻게든 출근해 일손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의료팀이 15일부터 일하게 될 시내 세인트폴 병원도 인력이 부족해 허덕이고 있다. 3~4층짜리 건물 두 동으로 이뤄진 이 병원에선 의사 11명과 간호사 10명 등 총 35명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병원은 몸과 마음에 고통을 겪는 이들로 넘친다. 로비에 마련된 간이병상에서 손을 심하게 다쳐 붕대를 감은 서너살배기 여아를 안아 달래고 있던 남자 간호사 셰르윈 봉고스(22)는 “아이 엄마가 다친 아이를 병원에 맡기고는 ‘다른 가족들의 상태가 심각해 다시 가봐야 한다’며 집으로 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15일 군 수송기 편으로 타클로반에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한편 중앙119구조단과 의료팀, 외교부 관계자 등 41명이 도착해 구호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광주광역시 지역 봉사단체 희망나무 소속 의료진 6명도 15일부터 현지에 도착해 긴급 의료봉사활동을 벌인다.

14일 오후까지 태풍 피해지역에 거주하거나 여행을 하던 한국인 19명은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타클로반에 파견된 외교부 피해대책상황실은 연락이 끊긴 한국인들의 소재 파악과 고립된 교민들에게 식량과 자금을 지원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타클로반/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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