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클린턴 정부때 대북정책 담당
방북협상 실패로 비난 시달려
이란협상 세부 조율 밑거름 돼
방북협상 실패로 비난 시달려
이란협상 세부 조율 밑거름 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다룬 최고 전략가였다. (대북 협상 실패는) 혹독한 경험이었지만, 복잡한 이란 핵협상을 준비할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 3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타결된 이란과의 핵협상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로 웬디 셔먼(사진) 정무차관을 지목했다. 셔먼 차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자문관과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내며 북한과의 협상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했으며, 그 경험이 이번 이란 핵협상의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
셔먼 차관은 2000년 10월 발표된 ‘북-미 공동 코뮤니케’를 강석주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과 함께 작성했으며, 그 직후 올브라이트 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협의하는 등 당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과 북-미 관계 급진전의 산파 노릇을 했다. 하지만 그해 말 대선에서 검표 논란 끝에 조지 부시가 당선되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됨에 따라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공화당한테서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2011년 9월 ‘국무부 넘버 3’인 정무차관 인준 과정에서도 대북 협상 이력 탓에 발목이 잡힐 뻔했다.
셔먼 차관은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이란 핵협상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데 활용했다. <뉴욕타임스>는 “셔먼이 이란 핵시설에 대해 북한보다 훨씬 더 잦은 ‘매일 사찰’을 주장했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사용한 것과 비슷한 이란의 아라크 중수로에 대해서는 ‘완전 가동 중지’를 압박했다”고 짚었다.
셔먼은 이란 핵협상 타결 직후 대북 협상 경험을 전면에 내세워 공화당과 민주당 내부 반대파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시기, 다른 문화, 다른 시스템”을 강조하며, 북한과 이란의 차이점을 짚었다. 그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핵 협상을 시작했을 때, 북한은 이미 1~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한 상태였다.
반면, 이란은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또 북한 주민은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있지만, 이란에는 바깥 세상과 연결된 중산층이 형성돼 있다. 셔먼 차관은 “이란 중산층은 제재 완화에 민감해, 미국이 (협상 타결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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