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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모두가 감시당하고 있다”…세계 경악시킨 미국의 두 얼굴

등록 2013-12-24 20:00수정 2013-12-24 21:46

[올해의 글로벌 이슈]

미 국가안보국 직원 스노든 폭로
하루 50억개 통화기록 쓸어모으고
메르켈 총리 등 각국정상 도청까지
12월24일 밤 지구마을 아이들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며. 산타 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한해 동안 살펴보고는, 이날 밤 착한 아이 집을 찾아가 선물을 놓고 가신다. ‘나는 착한 아이다. 선물을 받을 수 있다.’

그 꿈이 일찌감치 배반당했다는 걸 아이들은 몰랐다. 스노든 아저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알려줬다. ‘누가 착한지 나쁜지’ 살피는 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산타 할아버지가 지구마을에서 추방된 지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고.

2001년 9월11일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을 강타한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은 지구마을 사람 모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했다. 어린이라고 봐주는 건 없다. 국가안보국은 테러리스트를 색출한다며 70억 세계인의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감시했다. 남의 집 굴뚝에 허가 없이 드나드는 산타 할아버지도 그 감시망을 피할 길이 없다. 동심도 낭만도 지구마을에서 추방됐다.

2013년 6월 ‘유나이티드 슈타지 오브 아메리카’(미국을 옛 동독 국가보안부 슈타지에 빗댄 말)라는 지구적 정보감시 체제의 민낯이 뜨거운 태양 아래 드러났다. 이른바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 사건’, <한겨레>가 선정한 2013년 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이슈’다.

감시받는 디스토피아…디지털시대 사생활 보호 경종

‘세계 뉴스에 끼친 영향력’을 기준으로, 올해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 버금가는 사건은 없었다. 지난 6월 초 영국 <가디언>과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특종 보도가 시작된 이래, 스노든이 제공한 뜨거운 뉴스들이 세계 유력 언론의 머리기사를 쉼 없이 장식하고 있다. 지금껏 공개된 내용은 스노든이 확보한 문서의 “1%밖에 안 된다”는 <가디언> 에디터의 말에 따르면, 분화구는 이제 불을 뿜기 시작했을 뿐이다. 지난 7개월 동안 폭로된 게 고작 1%라면, 남은 99%에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감시의 현실이 감춰져 있는 것일까.

스노든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은 삶 그 자체였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느라 학교생활도, 사회생활도 변변치 못했다. 그 때문에 미 중앙정보국(CIA) 경비직원으로 정보기관과 인연을 맺었다. 홀로 깨친 컴퓨터 실력만으로 중앙정보국 컴퓨터 관리직과 국가안보국 계약직원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국가정보국의 기밀을 볼 수 있는 컴퓨터 앞에서 그가 발견한 세상은 디스토피아였다. ‘위험을 예방한다’는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막연한 판단만으로 무고한 시민들의 정보가 저인망식으로 수집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200년간 지키려고 발버둥친 자유가 ‘자유 수호’라는 명목으로 짓밟히는 아이러니가 버젓이 행해졌다. 미국법과 정책의 보호 대상이 아닌 ‘비미국인’의 사생활은 태양 아래 벌거벗은 몸과 다를 게 없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스노든은 자신이 발견한 디스토피아를 폭로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미국 시민권을, 연봉 20만달러(약 2억1200만원)를, 가족을, 연인을 포기했다. 5월20일 홍콩으로 탈출해 <가디언> 기자 등을 접촉했다. 6월 초부터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버드대를 나온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정보시대의 ‘피리 부는 사람’의 길을 갔다면, 대학 졸업장도 없는 스노든은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예언자의 길을 택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비유다.

스노든은 집요했다. ‘지구적 정보감시 체제’라는 디스토피아를 폭로할 수 있다면, 개인의 불명예와 냉소적 지식인들의 비난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시민의 ‘사생활의 자유’를 지키려, 그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나라인 러시아에서 1년짜리 임시 망명 허가증을 발급받는 굴욕을 감수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음은, 그 뒤 벌어진 일이 웅변한다.

미 국가안보국은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쓸어모아 분석해왔다. 하루 50억개의 전화통화 기록과 수억건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기록을 빨아들였다. 이런 일을 하는 데 3만여명의 직원이 동원돼 한해 520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쓴다. 컴퓨터 냉각수로만 하루 640만ℓ가 사용된다. 스노든이 폭로한 국가안보국의 한 문서에는 “2002년 미국을 거쳐간 세계 인터넷 사용량의 99%와 2003년 세계 전화통화 기록 33%가 미국 기업들의 협조가 있거나, 없는 채로 수집됐다”고 적혀 있다.

미 국가안보국은 도·감청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남아메리카의 껄끄러운 상대인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서부터 유럽의 핵심 동맹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감시했다.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캐나다 등이 미국과 함께 영어권 첩보동맹 ‘다섯개의 눈’을 이뤄 미국의 정보감시를 도왔다. 한국도 싱가포르와 함께 미국의 감시활동을 도왔는데, 미국의 ‘핵심 감시대상국’이기도 했다. 도와주고 뺨 맞은 바보 꼴이다.

가족·미국 시민권·고액연봉 포기하고
NSA 전방위 정보수집 언론에 폭로
가디언 “지금껏 폭로된 것 1% 불과”

미 연방법원 “정보수집 위법” 판결
오바마 내달 개혁안 발표 예정
스노든 “폭로결과 세상이 결정할 것”

이 모든 사실은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모르고 넘어갔을 일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 부인한 뒤 회개했지만, 키스 알렉산더 미 국가안보국장은 미국인 수백만명의 기록을 수집한 사실을 열네번이나 부인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 도청 사실을 들키고도 “지금은 도청하고 있지 않다”며 진실을 호도했다.

스노든이 협력 매체인 <가디언>과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미 주간지 <뉴요커> 등 각종 매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올해의 사상가’로 꼽힌 건, 단순히 뉴스의 양 때문만이 아니다. 스노든은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뿌리부터 재조직하는 ‘정보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을 각성시켰다. 정보감시 및 사생활과 관련한 질문들도 국제적인 어젠다가 됐다. <뉴요커>는 “세계는 스노든 덕분에 ‘정부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감시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에 대해 눈을 떴다”고 상찬했다. 덧붙여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할지,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건지 따위에 관한 ‘오래 지속될 논쟁’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와 교통카드가 우리의 동선을 기록하고, 전자우편·채팅·문자메시지가 우리의 사회관계와 생각의 지도를 저장하고, 신용카드 구매 기록이 우리의 소비 습관과 취향을 노출하고, 노트북 컴퓨터에 써넣은 구글 검색어가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과 고민을 보관하고…, 이 모든 것을 미 국가안보국 같은 감시자들이 훔쳐보고 분석한다는 사실을,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껏 몰랐을 것이다.

스노든은 <타임>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공중, 기술집단, 사법부, 의회, 행정부 등 5개 집단의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폭로 이후 비록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으나, 의미있는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 연방 지방법원은 지난 16일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인 전화통화기록 정보 수집을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감시 행위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파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국가안보에 끼칠 영향을 고려한다며 명령 이행을 상급법원 최종심 결정 때까지로 미뤘다. 정보기관은 힘이 세다.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 8곳은 지난 9일 미국 정부의 감시활동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 서한을 발표했다. 정보수집 범위와 권한을 제한하고, 국가안보국 감독 체제를 확립하라는 주장 등을 담았다. 국가안보국이 이들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센터를 활용해 온 사실이 알려진 뒤, 세계 이용자들의 신뢰가 필요한 미국 기업들도 곤란한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이런 집단행동 서한에 서명했을 리는 없다고 <뉴요커>가 꼬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송년 기자회견에서 국가안보국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백악관 자문위원회의 개혁 권고안을 검토해, 다음달 개혁안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정보감시 근절과 사생활 보호를 위한 변화의 물결은 이미 미국 국경을 넘어섰다. 유엔은 18일 사생활을 불법적인 감시에서 보호하려는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 권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 가입국이 사생활권 보호를 위해 감시·도청·개인정보수집에 관한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며, 이 법률은 국제 인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저인망식 메타데이터 수집과 지구적 정보감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낸다.

스노든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정보감시에 대한 나의 폭로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세상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다. 스노든이 모든 걸 걸고 지키려 한 ‘사생활의 미래’를 지키는 일은 이제 인류의 몫이 됐다. 지구마을 사람들이 스노든의 폭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빅 브러더’에 어떻게 저항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서른살이 넘은 미국인 가운데 “스노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여기는 이가 32%에 불과하단다. <워싱턴 포스트>의 여론조사 결과다. 벤 위즈너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국장은 아예 “추적 기술은 이미 민주주의적 제어 범위를 벗어났다. 올해 우리가 배운 것은 정보당국이 우리 행위를 감시하기로 결정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체념 뒤에 남는 건 벌거벗은 삶이다. 스노든의 옆자리에 서야 하는 이유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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