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글로벌 이슈]
미 국가안보국 직원 스노든 폭로
하루 50억개 통화기록 쓸어모으고
메르켈 총리 등 각국정상 도청까지
미 국가안보국 직원 스노든 폭로
하루 50억개 통화기록 쓸어모으고
메르켈 총리 등 각국정상 도청까지
NSA 전방위 정보수집 언론에 폭로
가디언 “지금껏 폭로된 것 1% 불과” 미 연방법원 “정보수집 위법” 판결
오바마 내달 개혁안 발표 예정
스노든 “폭로결과 세상이 결정할 것” 이 모든 사실은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모르고 넘어갔을 일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 부인한 뒤 회개했지만, 키스 알렉산더 미 국가안보국장은 미국인 수백만명의 기록을 수집한 사실을 열네번이나 부인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 도청 사실을 들키고도 “지금은 도청하고 있지 않다”며 진실을 호도했다. 스노든이 협력 매체인 <가디언>과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미 주간지 <뉴요커> 등 각종 매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올해의 사상가’로 꼽힌 건, 단순히 뉴스의 양 때문만이 아니다. 스노든은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뿌리부터 재조직하는 ‘정보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을 각성시켰다. 정보감시 및 사생활과 관련한 질문들도 국제적인 어젠다가 됐다. <뉴요커>는 “세계는 스노든 덕분에 ‘정부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감시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에 대해 눈을 떴다”고 상찬했다. 덧붙여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할지,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건지 따위에 관한 ‘오래 지속될 논쟁’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와 교통카드가 우리의 동선을 기록하고, 전자우편·채팅·문자메시지가 우리의 사회관계와 생각의 지도를 저장하고, 신용카드 구매 기록이 우리의 소비 습관과 취향을 노출하고, 노트북 컴퓨터에 써넣은 구글 검색어가 우리의 가장 깊은 열망과 고민을 보관하고…, 이 모든 것을 미 국가안보국 같은 감시자들이 훔쳐보고 분석한다는 사실을,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껏 몰랐을 것이다. 스노든은 <타임>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공중, 기술집단, 사법부, 의회, 행정부 등 5개 집단의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폭로 이후 비록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으나, 의미있는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 연방 지방법원은 지난 16일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인 전화통화기록 정보 수집을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감시 행위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파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국가안보에 끼칠 영향을 고려한다며 명령 이행을 상급법원 최종심 결정 때까지로 미뤘다. 정보기관은 힘이 세다.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 8곳은 지난 9일 미국 정부의 감시활동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 서한을 발표했다. 정보수집 범위와 권한을 제한하고, 국가안보국 감독 체제를 확립하라는 주장 등을 담았다. 국가안보국이 이들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센터를 활용해 온 사실이 알려진 뒤, 세계 이용자들의 신뢰가 필요한 미국 기업들도 곤란한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스노든이 아니었다면,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이런 집단행동 서한에 서명했을 리는 없다고 <뉴요커>가 꼬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송년 기자회견에서 국가안보국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백악관 자문위원회의 개혁 권고안을 검토해, 다음달 개혁안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정보감시 근절과 사생활 보호를 위한 변화의 물결은 이미 미국 국경을 넘어섰다. 유엔은 18일 사생활을 불법적인 감시에서 보호하려는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 권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 가입국이 사생활권 보호를 위해 감시·도청·개인정보수집에 관한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며, 이 법률은 국제 인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저인망식 메타데이터 수집과 지구적 정보감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낸다. 스노든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정보감시에 대한 나의 폭로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세상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다. 스노든이 모든 걸 걸고 지키려 한 ‘사생활의 미래’를 지키는 일은 이제 인류의 몫이 됐다. 지구마을 사람들이 스노든의 폭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빅 브러더’에 어떻게 저항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서른살이 넘은 미국인 가운데 “스노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여기는 이가 32%에 불과하단다. <워싱턴 포스트>의 여론조사 결과다. 벤 위즈너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국장은 아예 “추적 기술은 이미 민주주의적 제어 범위를 벗어났다. 올해 우리가 배운 것은 정보당국이 우리 행위를 감시하기로 결정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체념 뒤에 남는 건 벌거벗은 삶이다. 스노든의 옆자리에 서야 하는 이유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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