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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미, 동북아 구도 새 균형점 추구…한국 ‘전략적 가치’ 높일 때

등록 2014-01-01 21:53

[2014 기획]
“전후 미국의 동북아에 대한 관심의 핵심은 공산화된 중국의 등장이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본의 가치가 재발견되었고, 일본을 키우기 위하여 그 뒷마당으로 한국 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동양사학자이자 일본 주재 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 교수가 자주 한 말이다. 너무 노골적으로 단순화하여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전후 미국 정부의 동북아 전략의 뼈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사실 미국 정부는 중국 대륙이 공산화하자 일본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로 취급하다가 동북아 동맹국가로 격상시켜 반공의 보루로 육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범 청산 작업은 일본을 약화 내지 무력화시킨다고 하여 돌연 중지 혹은 최소화시키고 근대 산업국가로 육성하게 된다.

미, 군산복합체 압력서 일부 탈피
금융계 등 요구로 중국 경협 중시
센카쿠 문제 등 언급 피해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구체화되었고 한국은 그 조약을 기반으로 그 범위 안에서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결국 식민지 청산 없는 비정상적 국교정상화를 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기 한국을 규정한 가장 기본적인 국제적 틀은 라이샤워 명제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한다. 나는 미국 국무부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싱크탱크의 분위기에서 그리고 하버드대학의 공기에서 라이샤워 명제가 기본적으로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절감하였다. 오바마 정부는 이미 미국이 대서양 국가에서 태평양 국가로 전환했다고 선언하고 ‘아시아에의 회귀’(Pivot to Asia)를 표방하고 있다. 아시아 회귀 정책의 핵심 개념은 리밸런싱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발표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포린 폴리시> 2011년 11월호)를 비롯해 톰 도닐런의 ‘2013년의 미국과 아시아태평양’(The United States and the Asia-Pacific in 2013) 등 워싱턴 정책통들의 연설문에서 개략적인 내용을 볼 수 있으나 아직 통합적인 정책문건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국제정치학자는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회귀 방침이 진심인지 아닌지 ‘예스’라고도 ‘노’라고도 할 수 있다”고 유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 전반이 시퀘스터(미국 연방 예산 자동삭감)와 국내 정쟁에 묶여 저조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미 미국은 해외주둔 군사력의 60%를 아시아로 집결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이슬람 지역에서의 13년에 걸친 ‘긴 전쟁’(Long War)에서 손을 떼고 군사력을 빼내 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의 기지로 옮기는 준비를 시작했고, 한국·일본·호주와의 양자동맹을 강화하면서 아태 다자경제협력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커다란 정책전환은 앞서 본 라이샤워 명제가 수정될 수 있는 모처럼 중요한 기회다. 사실 미국은 베트남전 실패 뒤 계속 이슬람 지역에서의 13년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실패의 늪에 빠져 있어 한국에서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달성을 미국의 대외정책 자존심을 지켜주는 성공사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오바마나 국무장관의 빈번한 한국 칭찬은 듣기 민망할 정도다. 그런 분위기에서 최근 한국을 핵심축(Linchpin), 일본을 주춧돌(Cornerstone)로 규정한다. 다소 추상적인 이 규정이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회귀 정책에서 라이샤워 명제가 수정될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지는 것일까?

일본 통한 중국 견제 약화되는데
우린 새로운 미-중 관계 못읽어
미 리버럴 기류에 올라타야

지난해 10월 초 일본에서 열린 미-일 2+2 회담(외무·국방장관 합동회담)이 이 의문을 풀어주는 중요한 행사였다. 한국에서는 미국이 박근혜 정부의 완고한 반일 자세에 등을 돌리고 중국을 겨냥하여 아베 정부와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지지하기로 했다는 평가가 주조를 이루었다. 저명한 어떤 전문가는 “재정적자에 발이 묶인 미국이 아베 정부를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격상시켜 한국을 일본 중심의 대중국 군사대결 체제에 강압적으로 편성시킨 회담”으로 단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서 한국은 다시 한번 라이샤워 명제 그대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만약의 사태를 염려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일본과 미국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개정이나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이 더 많고 한국의 시민세력도 그들과 연대하여 투쟁해야 되는데 그 길을 차단해 버리게 된다. 사실 일본 보수세력과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전쟁 위험이 클수록 덕을 본다는 점에서 일본의 자위권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그들 역시 자위권에 대해 △일본 자신이 결정한다 △주변국의 이해를 얻도록 노력한다는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장관,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같은 친일적 아시아 정책통들도 “먼저 한국의 이해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미국 쪽은 일본의 강한 요청이 있었음에도 센카쿠열도 문제 혹은 중국이란 용어 표현조차 일절 피했다. 또 일본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가지는 것을 극히 꺼리는데 중국과의 전쟁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한반도 안보에 국한을
그렇지 않으면 4강 국가 사이에서
평화와 협력의 조정자 역할 못해

초기에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압력으로 중국과의 대결을 지향하고 아베의 군비확장 노선을 지원하는 움직임이 강했다. 그러나 차츰 일반 평화산업계와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강화되었다.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가치를 중국과 공유하고자 하는 리버럴들의 움직임이 고개를 들며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균형을 잡아 나가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에게 중국은 적(enemy)이라기보다 대항자(adversary)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2+2 회담에서 미국 단독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은 협력하는 측면과 함께 강하지만, 일본과 손잡고 함께 견제하는 측면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따라서 일본을 통한 중국 견제 카드라기보다 중-일 관계 견제 내지 조정 카드라는 성격을 띠어 간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작지만 중요한 변화다. 우리는 그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주한미군 장성이 아베 총리의 개헌 움직임을 “이 지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미국은 올해의 환태평양 합동연습에 처음으로 중국군을 초청하는가 하면 최근 중국에 대해 공산권 첨단기술 수출금지 조처도 거의 해제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우리가 2+2 회담을 잘못 읽은 데 이어 그 후속 움직임을 잘못 읽으면 동북아에서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서 한국의 새로운 위치를 못 찾고 라이샤워 명제에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어떤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아베의 전후체제 극복은 미국이 만든 전후질서의 부정을 의미하고 전후질서 부정의 원점이 야스쿠니라는 점에서 사실 아시아 제국보다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가 아베의 지론이다. 미국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징계 수단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뉴욕 타임스>가 “일본은 이제 미국이 믿을 수 있는 동맹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고 지적한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리버럴 세력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으로 한국은 이 흐름과 함께하고 올라타는 전략이 중요하다. 이것은 국내 민주주의의 확충이 한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한-미 양자동맹을 아시아 리밸런싱 정책 내에서 한반도의 안보 역할에 국한하는 것으로 묶어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중 간, 그리고 4강 사이에서 자주적이고 중립적인 평화와 협력의 조정자 내지 대변자 역할을 할 수가 없다. 4강의 역학관계는 그러한 중간 조정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고 한국 이외에 그 역할을 할 나라가 없다.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달 방한했을 때 한-일 역사갈등을 중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 한말 태프트-가쓰라 조약으로 식민지화를 지원했고 전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식민지 미청산의 길을 열었고 독도 문제도 그 일환이다. 만일 아시아 회귀 정책으로 또 한번 군사대국 일본에 한국을 귀속시키는 비슷한 전략을 획책한다면 세번째 대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임을 장엄하게 일깨워줘야 한다.
미국의 관료와 싱크탱크 인사들은 일본 보수세력의 눈으로 한국과 아시아를 보는 관행에 젖어 있다. 의외로 역사의 색맹이 많다. 그 눈으로 아시아 리밸런싱을 설계하면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모른다. 그 한계를 메워줄 대안과 디테일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해낼 기회가 바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다. 특히 오는 4월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이전이 결정적 시기다.

하버드대 초빙교수, 한국 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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