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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선생님이 놀이하듯 철자맞히기 문제 내자 “저요 저요”

등록 2014-01-01 22:02수정 2014-01-01 23:53

에티오피아 웨스트셰와에 있는 보다학교의 2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이 불러주는 오로미아어 단어를 받아쓴 뒤 석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에티오피아 웨스트셰와에 있는 보다학교의 2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이 불러주는 오로미아어 단어를 받아쓴 뒤 석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4 기획]
웨스트셰와 긴지마을 보다학교
교육법 모르는 교사 태반인데
한 명당 학생 100명 가르쳐야

워크숍 통해 교사들 질 높이자
공부 뒤처진 아이도 능률 쑥쑥
마을 ‘북뱅크’ 책 읽는 기회 늘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웨스트셰와에 있는 긴지마을로 가는 길은 멀진 않았지만 험난했다. 읍내까지 1시간30분가량 달린 뒤 다시 30분 동안 덜컹대며 움푹움푹 패인 비포장도로를 지났다. 그 길을 가는 동안 기자가 찬 타량 외에 바퀴 달린 거라곤 자전거 1대를 본 게 전부였다. 길엔 당나귀, 말이 끄는 5인승 마차, 그리고 걷는 사람들뿐이었다.

지난해 11월6일, 그렇게 찾아간 보다학교는 1958년에 지어진 유서깊은 학교다. 초등학교 1~8학년까지, 전교생이 602명이나 된다. 하지만 교사는 고작 6명 뿐. 한 교실에 80~100명씩 모여 공부한다. 이 학교는 세이브더칠드런이 2011년부터‘읽고 쓰기 향상 프로그램’(리터러시 부스트·Literacy Boost)을 벌여온 곳이다.

2학년 교실에 들어가니 70여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불러주는 소, 염소 같은 단어를 석판에 분필로 받아적고 있었다. 긴지마을은 에티오피아의 다수 부족인 오로미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곳 아이들은 오로미아어로 교육을 받는다. 받아쓰기를 마친 선생님은 이번엔 칠판에 단어를 쓴 뒤 아이들이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일부 철자를 지우고 알아맞히기 게임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서로 정답을 맞히겠다며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6년차 교사인 아다네즈 테페라(26)는 지금까지 세이브더칠드런의 교사 워크숍에 10번가량 참여했다. 이곳에서 철자 가르치기, 음소 인식, 단어 외우기, 유창하게 읽기, 문장 맥락 이해 같은 핵심적인 읽기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배웠다. 또 단어카드 만드는 방법, 교실 꾸미기 같은 실무도 익혔다. 그는 “‘읽고 쓰기 향상 프로그램’이 없었을 땐 반 아이 80여명 중 5명밖에 글을 몰랐다”며 “이젠 거의 모든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고 공부에도 흥미를 느껴 출석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그동안 소말리아와의 전쟁, 기근, 정치불안 등으로 어린이 교육에 집중할 틈이 없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낮은 취학률, 높은 문맹률이었다. 교사의 질이 낮고 교육 환경이 열악해, 학교를 다녀도 까막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50%나 된다.

웨스트셰아의 교육 담당 코디네이터인 체가예 호르도파는 문맹률이 높은 이유로 세가지를 들었다. 우선, 교사들이 교육대학에서 읽기 교수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체가예는 “읽기 교육과 관련한 강의가 따로 없고 워크숍을 한번 정도 할 뿐인데다 교대를 졸업한 뒤엔 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둘째는 읽을 거리가 없는 게 문제다. 학교 교재부터 부족하니 동화책 같은 것은 구하기 힘든 게 당연하다. 셋째는 부모들의 문맹률이 높아 가정교육이 이뤄지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읽고 쓰기 향상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다학교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아스고리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400명이 넘는 큰 학교로, 이곳에서도 ‘읽고 쓰기 향상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4학년생인 데차사 모르가(10)는 예전엔 낙제를 해서 진급을 못할 만큼‘학습 부진아’였다. 데차사가 달라진 것은 선생님 티기스트 다칼레(26)가 ‘읽고 쓰기 향상 캠페인’교사 워크숍에 참여하고 나면서부터다. 티기스트는 친구들끼리 서로 책 읽어주기, 반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기, 책을 이용한 ‘얼음땡 놀이’(책 읽다가 갑자기 멈추는 놀이)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업에 도입했다. 요즘 데차사는 글을 모르는 부모님에게 책을 읽어드린다. 데차사는“내가 책을 읽어드리면 엄마, 아빠는 ‘데차사야, 계속 열심히 해라,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라’라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접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기존에 출판된 책들을 구입하는 것 외에, 새로운 책을 만들기도 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마을 전통 이야기를 채집해 오라는 숙제를 내주고 이를 정리한 뒤, 교육 전공자가 아이들 수준에 맞게 다시 집필하는 방식이다. 이런 책들은 마을마다 있는 ‘북 뱅크’에 비치된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북 뱅크는 동네에서 자원봉사자를 정해 그 집에 200~250권의 책을 비치하고 이를 관리하게 한 작은 도서관이다. 아스고리 초등학교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소리 리키투는 “아이가 북 뱅크에서 책을 빌려와 옆집 애랑 함께 책 읽는 걸 볼 때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고 말했다.

웨스트셰와(에티오피아)/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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