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살에 허용 법안 상원 통과
하원 통과땐 ‘전연령 허용’ 첫사례
“미성년도 선택권”-“판단력 부족”
하원 통과땐 ‘전연령 허용’ 첫사례
“미성년도 선택권”-“판단력 부족”
성인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벨기에에서 이번엔 ‘어린이 안락사’가 화두로 떠올랐다. 영국 <비비시>(BBC)는 지난달 말 벨기에 상원에서 18살 미만 미성년자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된 뒤, 올 들어 하원 표결을 앞두고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고 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불치병을 앓던 어린 생명이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고 치명적 약물을 주입받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일부 소아과 의사들은 고통이 경감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미성년자라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성년자 안락사를 허용해달라고 지난해 상원에 청원서를 제출한 소아과 의사 헤를란트 판베를라르는 “우리는 신처럼 굴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말기에 이른 어린이 환자들을 자연사하도록 놔둔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비참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상원에서 찬성 50표, 반대 17표로 통과된 이 법안을 보면, 어린이들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며 부모와 의료진의 동의가 있어야 안락사가 가능하다. 200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네덜란드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다면 12살 이상 미성년 환자들도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 앞으로 벨기에 하원이 이번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모든 연령의 환자들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하는 첫 사례가 된다.
미성년자 안락사에 찬성하는 집권 사회당은 “이 법안은 궁극적으로 인간적인 존엄에 대한 법안”이라고 말한다. 2002년 안락사 합법화 이후 벨기에에선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안락사를 선택하겠다는 뜻을 미리 가족과 의료진에게 밝혀놓은 암환자들은 ‘잘 죽을 수 있다’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어, 자연사하는 암환자들보다 오히려 생존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루뱅대학병원 의사 마를레인 레나르트는 “만약 아이를 치료할 수 없다면 고통을 완화시킬 순 있다”며 “내 경험상 모든 아이들은 끝까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어린이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8살짜리 아들을 암으로 잃고 루뱅대학병원의 어린이 암병동 자원활동가로 일하는 페이커 판덴우버르는 “아픈 아이들이 제 나이 또래보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안락사라는 해결책을 결정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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