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불참” 압박하는 미 등쌀에
이란 참석 여부 하룻만에 뒤집혀
이란 참석 여부 하룻만에 뒤집혀
연임에 성공한 뒤 국제사회의 갈등 중재자로서 독자적인 구실을 추구해 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를 3년 남겨두고 지도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반 총장은 19일 미국의 반대에도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국제 평화회의’(제네바-2)에 이란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후방 지원하며 시리아 내전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반 총장은 아사드 지지 국가들까지 힘을 모아 시리아 사태를 해결해보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미국은 공개적으로 ‘회담 보이콧’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반 총장을 압박했다. 반 총장은 자신이 직접 모하메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한테서 ‘제네바-1’ 회의 합의문(시리아 과도정부 구성) 수용 의사를 확인했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이란의 공식 견해 표명을 요구했다. 이란 외무성은 이에 “회담 참가에 전제조건을 둘 수 없다”는 성명 발표와 함께 ‘제네바-1’ 합의문을 승인하지 않았다.
앞에서 미국에 가로막히고 뒤에서 이란에 뒤통수를 맞은 반 총장은 결국 하루만에 백기를 들었다. 마틴 네시르키 유엔 대변인은 20일 “반 총장도 이란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이번 회의에 이란은 참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어렵고, 제대로 일하기도 어렵다. 반 총장도 한국 외교장관이던 2006년 9월 사실상 ‘면접’을 통해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한테서 유엔 사무총장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 총장은 첫 임기 내내 미국과 불협화음 없이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2011년 연임에 성공한 이후, 굵직한 국제 현안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 8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시리아 군사공격 계획을 밝히자 “신중해야 한다”고 맞섰고, 지난 연말엔 미 국가안보국(NSA)의 유엔 도청을 풍자한 동영상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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