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끝인 니제르의 테네레 사막에 있는 UTA772 기념물. 프랑스 여객기 UTA772는 1989년 9월19일 사하라 사막 상공에서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폭발했고, 유족들은 희생자 170명을 기리고 정의와 평화를 상징하려고 이 기념물을 세웠다. 테네레/UTA항공 DC10기 유족회 누리집 갈무리
사막에서 사라진 파리행 비행기
[지구촌 화제]
구글 지오아이(Geoeye)의 위성 사진을 보면 사하라 사막의 끝, 니제르의 테네레 사막에는 아름다운 타투(문신)가 새겨져 있다. 나침반 모양의 거대한 스톤 서클 안에 DC10 여객기의 실물 크기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데, 비행기 머리는 프랑스 파리 쪽을 향하고 있다. 비행기는 170개의 깨진 유리 파편들이 감싸고 있고, 옆에는 해시계 바늘처럼 뾰쪽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비행기 날개 한쪽이다. 인적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이 ‘미스터리 서클’에 얽힌 비극과 희망의 역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9월19일 프랑스 여객기 UTA772는 콩고공화국의 브라자빌에서 파리를 향해 날고 있었다. UTA772는 사하라 사막 상공에서 연락이 두절됐는데, 다음날 산산조각이 난 상태로 프랑스 공군 정찰기에 발견됐다. 낙하산 부대가 ‘승객 156명, 승무원 14명 전원 사망’ 사실을 확인한 건 그 다음날이었다. 비행기 잔해 속에서는 폭탄이 발견됐다. 리비아의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테러였다. 사하라의 테네레 사막에 새겨진 비행기는 UTA772, 유리 파편 170개는 숨진 희생자, 비행기 날개는 UTA772의 실제 오른쪽 날개다. 이 기념물은 UTA772의 오른쪽 날개 옆에 탔다가 목숨을 잃은 탑승객의 아들, 드누아 마르크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그가 18년간 추구해 온 ‘정의’의 마지막 결과물이다.
비행기가 떨어지던 날, 파리에서 판매·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던 26살의 드누아는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걱정스럽다는 전화였다. 그는 “일하는 중”이라며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이내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공항 게시판에는 “연착중”이라고 떴지만, 뉴스를 통해 사라진 비행기와 아버지의 운명을 직감했다.
사건 10년만인 1999년 프랑스 법원은 궐석 재판을 통해 리비아인 6명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리비아는 자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3400만달러를 물어줬다. 희생자 가족들 중 500여명만 사망자와의 관계에 따라 3000~5000유로(435만원~726만원)를 받았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 원수의 최측근이었던 압둘라 세누시를 포함한 범인들은 리비아에서 자유와 권세를 누렸다.
2002년 어느날 아침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가 미술 전시회와 기자회견을 위해 파리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드누아는 “정육점에 가서 가축 피 한 바가지를 구한 뒤 그에게 뿌리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할 정도로 분노했다. 그러나 분노를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기자회견 입장권을 구했고, 사이프 카다피가 “UTA722 사건은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 그 앞에 나타났다. “내 아버지는 DC10 안에 있었다”는 말과 함께.
사이프 카다피는 “그가 나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드누아는 폭력 대신 대화를 선택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보상금은 너무 적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만남은 리비아 초대로 이어졌다. 사이프 카다피는 리비아로 돌아가 드누아 일행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드누아는 2003년 7월 리비아에서 사이프 카다피와 피 말리는 협상을 시작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외곽에 위치한 그의 빌라 주변은 배고픈 호랑이들의 포효가 들려올 정도로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모든 희생자에게 같은 액수의 보상금을 지불하는 문제였다. 당시 희생자들은 18개국 출신이었는데, 리비아는 아프리카인과 서방 출신에게 ‘같은 액수’를 보상하는 것에 난색을 표명했다. 드누아는 “모든 희생자에게 같은 액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고집했고 협상이 타결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2004년 1월9일, 드디어 리비아는 1억7000만달러 보상에 합의했다. 170명 희생자 1인당 똑같이 100만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
드누아는 이후 차드, 모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각국에 흩어져 사는 유가족들을 찾았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족 여부를 확인했다. 이 중 수령에 합의한 유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수령이 거부된 합의금은 리비아에 돌려줬다. 그리고 보상금 보관 기간중에 발생한 이자 수익으로 사막 위에 문신을 새겼다.
테네레 사막엔 북아프리카 알카에다(아킴)가 있다. 드누아는 기념물을 짓기 위해 니제르 내무부는 물론 투아레그 등 각 부족 지도자들과 이맘의 허락을 받았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이 지역 주요 부족에서 140여명을 공사에 동원했다. 평균 기온이 50℃에 이르고 물은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2007년 3월 시작된 6주간의 건립 기간은 평화로웠다.
드누아는 22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모든 사람들이 ‘왜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기념물을 짓느냐’고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물음에 “비행기들은 여전히 사막 위를 난다. 승객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으나, 뒤늦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드누아는 “우리는 복수의 정신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념물의 의미를 전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끝인 니제르의 테네레 사막에 있는 UTA772 기념물. 프랑스 여객기 UTA772는 1989년 9월19일 사하라 사막 상공에서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폭발했고, 유족들은 희생자 170명을 기리고 정의와 평화를 상징하려고 이 기념물을 세웠다. 테네레/UTA항공 DC10기 유족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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